[르포] "다행이지, 이미 다 잃었지만"…제주해군기지 반대 주민 한숨

입력 2017-12-14 17:13  

[르포] "다행이지, 이미 다 잃었지만"…제주해군기지 반대 주민 한숨
정부 구상권 철회 결정에도 활동가들 생명 평화 미사·시위 계속

(서귀포=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구상권? 그거 철회된다니 다행이지. 이미 다 잃긴 했지만…"
14일 오전 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된 서귀포시 강정마을 강정교를 건너던 한 주민은 해군이 제기한 구상권(공사 지연 손해배상금) 청구 철회에 대해 '환영할 일'이라면서도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주민 간 찬반 갈등을 겪으면서 공동체가 파괴될 대로 파괴됐다는 안타까움도 섞여 있는듯했다.
기지 반대 투쟁을 했던 다른 주민은 "우린 애향심에서 나섰어. 현재는 물 건너갔지만"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강정교에는 '생명 평화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구상권 철회' 등의 구호가 적힌 노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강정교는 물론 마을 주요 지점마다 10년째 같은 구호들이 걸려 있었다.
제주해군기지가 포함된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 완공되기 전인 2015년 말까지만 해도 집집이 이 같은 깃발들이 걸려 있었으나 지난해 초 해군기지가 완공되자 깃발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지금은 그 수가 훨씬 줄었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소송 철회 결정으로 인해 모든 투쟁이 마무리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대 투쟁 과정에서 주민 등이 받은 처벌 등에 대한 사면 요구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세금으로 기지 건설 과정의 손해를 물어내야 하느냐'는 일부 우익 세력의 주장으로 인해 또 한 번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표시했다.
주민들은 지난한 싸움 끝에 찾아온 구상권 철회 소식에 그나마 안도하고 있지만 드러내놓고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오히려 언론의 취재에 강한 거부감부터 보였다.

마을 주민과 달리 활동가들은 이날도 여전히 시위를 이어갔다.
오전 11시 해군기지 건설 공사 차량이 드나들었던 과거 공사장 입구 앞에서는 문정현 신부 집전으로 '생명 평화 미사'가 진행됐다.
마을로 이주한 활동가 위주로 참석, 조촐하게 미사가 진행됐다.
문 신부는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누리에 평화가 시작되리니'라는 가사의 노래를 목놓아 불렀다.
미사 직후에는 활동가들이 '해군기지 반대' 깃발을 들고 기지 입구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했다.
이날 시위에 참가한 김경훈 시인은 '구상권이 철회되면, 제주 강정 미국 해군기지는 그대로 보존되면, 구상권이 철회되면, 강정의 평화가 오나요, 죽어간 생명과 생명이 살아나나요'라는 내용의 시를 낭송했다.
한 활동가는 "평화를 위해 군사기지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는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지 않더라도 제주해군기지가 전략적으로 미국의 기지가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나의 큰 산을 넘었으나 강정마을회의 걱정이 모두 해결된 것이 아니다.
고권일 부회장은 "구상권 철회나 사면복권, 지원금 지급 등만 해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애향심에서 나선 주민의 정신적인 피해에 대한 위로와 자존감 회복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해군기지 입지 결정 과정에 대한 진상을 조사하고 잘못된 점이 드러나면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등 피해를 본 주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말 그대로 공동체 회복은 주민들이 마을에서 마음 편히 살게 해주는 것"이라며 "일방통행식 결정을 통해 국가가 강제로 추진하는 행태는 과거 적폐이므로 반성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해군과 함께 주민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했다.
핵잠수함 등 외국 군함이 기지에 입항하면서 버리는 폐기물 등 환경 오염 감시에 대한 정부의 철저한 정책도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군사기지 시설이 더는 강정에서 확장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도록 해군의 약속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군은 제주기지 건설 반대 활동으로 공사가 지연돼 손해를 봤다며 지난해 강정마을 주민과 연대한 시민에게 34억5천만원의 구상권 청구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 "상호 간 일체의 민·형사상 청구를 제기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의 강제조정 결정문을 지난달 30일 정부로 송달했다.
그러면서 "이 결정문을 송달받은 날부터 2주일 이내에 이의 신청을 하지 않으면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가진다며 이는 확정판결과 같다"고 언급했다.
이의 신청 시한인 이날 자정이 넘어서 15일부터는 구상권 문제가 법적으로 완전히 해결된다.
정부가 지난 12일 국무회의에서 법원의 강제조정안을 수용했고 피고 격인 주민과 시민. 단체 등의 권한을 위임받은 변호인단도 지난주 이의 신청을 하지 않기로 했다.
kos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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