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학당 10년] ② '글로벌 언어전쟁' 대응 과제는

입력 2017-12-18 06:31  

[세종학당 10년] ② '글로벌 언어전쟁' 대응 과제는
동포 대상 교육기관 통합 논란…예산은 中공자학원 10분의 1
지역편중·교원관리 부실 지적도…"범정부 차원 지원 늘려야"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문재인 정부는 지난 7월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공정한 문화산업 생태계 조성 및 세계 속 한류 확산'을 꼽으면서 "현재 6천만 명인 한류 팬을 2022년까지 1억 명으로 늘리고 세종학당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세종학당은 지난 10년간의 양적 성장과 높은 인기에도 전 세계 120여 개국에 1천여 개를 헤아린다는 중국의 공자학원 규모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883년 설립된 프랑스의 알리앙스 프랑세즈나 1918년 문을 연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처럼 유명 브랜드로 자리 잡으려면 콘텐츠를 확충하고 운영의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교육부 산하 한국교육원을 세종학당으로 통합한 것을 놓고서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 "동포·외국인 교육 달라야" vs "동포 현지화에 효율성 높여야"
가장 논란을 빚는 것은 지난해 7월 정부 결정에 따라 한국교육원을 세종학당으로 통합한 것이다.
동포 3,4세의 현지화로 외국인과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고는 하나 동포와 외국인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것은 엄연히 구분되는 일인데 의견 수렴 절차 없이 졸속으로 결정을 내려 동포에 대한 정체성 교육이 어려워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갑자기 이름이 바뀌고 한 지역에 복수의 세종학당이 생겨나 혼란을 부추긴다는 불만도 쏟아진다.
교육부 관계자는 "동포 대상 한국어 교재에는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정체성을 정립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예문에 넣어야 하는데 외국인 대상 교재와 통합하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일원화하겠다는 당초 방침과 달리 현재 외국인 대상 교재와 동포 대상 교재를 세종학당재단과 국립국어원이 각각 개발하고 있어 담당 부처만 바꾼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최미영 미국 다솜한국학교 교장은 "지난 8월 서울에서 열린 세계한국어교육자대회는 외국인 대상의 한국어 교육 확산을 위한 행사 성격이어서 재외동포 차세대의 정체성 교육을 담당하는 한글학교 교사들은 남의 잔치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면서 "동포 대상 교원들이 필요로 하는 별도의 연수 프로그램 구성이 아쉽다"고 말했다.
'재외국민의 교육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은 교육부 장관이 재외국민 교육에 필요한 교육용 자료를 제작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국어기본법에 따르면 세종학당재단이 세종학당 이외의 한국어 교원 연수를 담당할 근거가 없어 세종학당 브랜드 통합 방침이 법률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의 한 관계자는 "동포 후손들의 현지화가 진행됨에 따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면서 "브랜드를 통합하고 교재 개발과 교사 연수만 일부 이관했을 뿐 여전히 독립적인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현용 경희대 국제교육원장은 "각 지역의 실정과 특성을 고려해 세종학당을 비롯한 한국어 교육기관 간의 통합과 협업을 추진해야 상생과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며 "우수 사례를 널리 알리고 문제점을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담당 부처 간에 원활한 소통과 조율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 "외국인 75% 현지에서 사교육이나 독학으로 한국어 배워"
세종학당은 100년 안팎의 역사를 지닌 알리앙스 프랑세즈나 독일 괴테 인스티튜트와 비교해도 지난 10년간 놀랄 만한 성장세를 기록했으나 여전히 외연의 확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세종학당재단이 지난 6월 국내 외국인 유학생 17개국 출신 12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에 오기 전 공교육을 통해 한국어를 배웠다는 응답은 25%에 불과했다. 34%는 사교육에 의존했다고 응답했고 다음은 독학(25%), 드라마 등(7%), 동호회(2%)의 차례였다. 세종학당이 늘어나야 할 필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재단 출범 첫해인 2012년 세종학당의 예산은 49억여 원이었으나 올해 215억여 원으로 4배 이상 늘어났다. 내년 예산은 2.5% 증액된 220억6천400만 원이다.
그럼에도 중국 공자학원 예산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해 세종학당 증설이나 세종학당에 대한 지원 강화에 속도를 내기 어려운 형편이다. 세종학당재단은 앞으로 5년간 29개소 이상을 늘려 2022년 200개를 돌파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국가별 편중 현상도 문제로 꼽힌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송기석 의원(국민의당)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세종학당이 중국에 23개소, 베트남 10개소, 터키 5개소가 운영되고 있으나 인구가 1억 명이 넘고 한국과 인연이 깊은 멕시코, 나이지리아, 방글라데시, 에티오피아 4개국에는 설치돼 있지 않다"면서 일부 국가에 편중된 현상을 개선할 것을 요구했다.
교원 자질 향상과 철저한 관리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교문위 한선교 의원(자유한국당)은 "세종학당에 파견된 한국어 교원이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거나 심지어 2∼3개월 만에 현지 다른 업체에 취업하는 사례가 최근 5년간 11건 발생했는데도 내부 규정이 미비해 어떠한 제재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세계 각국, 소프트파워 주도권 쥐고자 자국어 보급에 각축
세종학당은 문화 교류와 공공외교 강화 정책에 따라 다양한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문화 보급 기능을 확대하기로 했다. 또 교원 파견과 현지 교원 재교육을 통해 교육의 질을 높일 생각이다.
나종민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은 "교육의 질은 교사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 만큼 전문 한국어 교원 파견을 꾸준히 늘리고 교원 역량 강화를 위한 재교육에도 힘쓰겠다"고 앞으로의 추진 방향을 밝혔다.
이와 함께 세종문화아카데미를 늘리고 문화 인턴을 파견하는 등 문화 프로그램을 확충해 한국어 교육과 한국 문화 확산의 선순환 구조가 구축될 수 있도록 한다는 복안을 세워놓고 있다.
세종학당은 10월 9일 온라인 학습 사이트 '누리-세종학당'을 통합 허브 사이트로 확장 개편했다. 한국어 학습 콘텐츠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관광 정보, 한국어 뉴스, 한국 유학 정보, 취업 정보, 한식 레시피 등을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도 한 번만 접속하면 언제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공부할 수 있도록 애플리케이션과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모바일 학습 체계도 마련할 방침이다.
21세기는 소프트파워가 국력을 좌우하는 시대이며 언어는 그 핵심이라고 전문가들은 역설한다. 따라서 각국은 자국어 보급을 통해 문화를 널리 알리고 그 성과를 공공외교에 적극 활용하고자 총성 없는 '글로벌 언어전쟁'을 펼치고 있다.
김종면 서울여대 국문과 겸임교수는 "시진핑의 중국은 중화 민족의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을 꿈꾸며 공자학원을 앞세워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적극 전파하고 있다"면서 "우리도 범정부 차원의 지원을 통해 세종학당을 한국 문화 보급의 대표 브랜드로 키워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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