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트파워 85위 양혜규, 베를린의 옛 양조장 '킨들'서 전시
쾰른의 루드비히 미술관서 내년 4월부터 회고전
(베를린=연합뉴스) 이광빈 특파원 = "이번 전시는 '사사삭' 움직이는 귀신 같은, 굿판에서 무당의 몸짓 같은 느낌을 주려했습니다."
14일 쇠락한 맥주 양조장을 전시관으로 바꾼 독일 베를린의 '킨들'에서 푸른색 내심과 검은색 외피로 된 대형 블라인드가 천천히 회전했다.
양조장 건물 중 곡물 저장고로 쓰인 층고 20m에 달하는 장소였다.
창밖에서 들어온 빛은 움직이는 푸른색 블라인드에 반사되며 천천히 흰색을 입혀나갔다. 빛과 함께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양혜규(46)의 작품 '침묵의 저장고-클릭된 속심'이다.
킨들 인근에서 베를린에 작업실을 둔 양 작가를 만났다.
양 작가는 가뜩이나 국제무대에서 작품의 주가를 높여가는 가운데 올해 겹경사를 맞았다.
영국 현대미술지 아트리뷰가 선정하는 '2017 파워 100인'에서 85위에 올랐다.
독일의 권위 있는 미술상인 볼프강 한 상(Wolfgang Hahn Prize)의 내년도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독일의 명문 미술대학이자 모교인 슈테델슐레의 교수로도 임용됐다.
그의 위치는 국제 미술계에서 한껏 올라갔지만, 그의 시선은 예전처럼 어느 영역에도 깃들지 않았다. 베를린에 터를 닦고 있지만. 이곳에 시선을 두지 않는다.
독립적으로 어디에 속하지 않은 채 넘나드는, 무중력 같은 상태가 편하단다. 이번 작품도 이런 맥락이다.
슈테델슐레 교수로 임용된 것도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고 독립적인 위치에 선 탓이 크단다.
인터뷰에 임하던 양 작가는 다소 지쳐 보였다. 내년 회고전에 내놓을 작품을 고르고, 재제작하는 중이란다.
독일 쾰른의 세계적인 루드비히 미술관에서 내년 4월부터 8개월간 회고전을 연다.
'1기 양혜규'를 결산하는 자리인 만큼 모든 에너지를 쏟는 듯했다. '2기 양혜규'의 작품 세계에 대해선 "전혀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이번 킨들 전시에서는 후기 산업화 과정 속 소외된 공간에서 '살풀이'를 하는 가운데서도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미래에 대한 여지를 남겨놓는 효과도 살렸다.
다음은 일문일답.
-- 킨들에서 선보인 작품은.
▲ 베를린은 산업화가 완성된 곳이라는 지점에서 출발했다. 킨들은 후기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공간이 문화적으로 재탄생된 곳이다. 양조장이란 킨들의 공간 속에서 작품이 전시되는 곳은 높이가 20m인 곡물 저장 공간이었다. 이 장소의 배경과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카셀 도쿠멘타에서 전시한 작품은 격렬하면서 그로테스크하게 춤을 추든 듯한, 위로 올라가고 열리고 닫히는 등 군사 퍼레이드 같은 모습이었다면, 이번 전시는 사사삭 움직이는 귀신 같은, 굿판에서의 무당의 몸짓 같은 느낌을 주려했다. 과거에는 살풀이만 했다면 이번에는 미래 지향적인,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담았다. 코머의 파란색은 컴퓨터의 파란 화면을 상징할 수 있다. 클릭을 통해 어떻게 움직일지, 없앨지 알 수 없는 잠재적인 상태다.
- 아트파워 85위 등 올해 좋은 일이 많았다.
▲ 등수 관련한 의뢰가 오면 무조건 빼달라고 한다. 예술에서 등수를 매기는 것은 진심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이 아트'는 대중성의 측면에서 다르다. 하이 아트는 역할이 다르다. 요즘에는 전문지에서도 순위를 매기는데 마음이 아프다.
-- 볼프강 한 상도 각별할 것 같다.
▲ 수상하게 됐다고 전화가 왔었을 때 '알았다'고 하고 그냥 끊었다. 무심하고 감이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일은 내 식으로 하면 되는 것이고, 일에 따른 임팩트는 모르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상 받는 것은 결혼하는 것과 느낌이 비슷한 것 같다. 저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좋아한다. 저한테는 상보다 전시가 더 중요하다. 이번 상은 회고전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힘을 실어주는 것 같다.
-- 루드비히 전시회에는 어떤 작품들을 내놓는가.
▲ 1994년께부터 1천136점을 만들었다. 이 작품 중 선택해 내놓는 게 회고전의 가장 큰 일이다. 정글에서 길을 내는 작업과 같다. 어떻게 가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인지 고민하는 작업이다. 각 시기와 요소를 아울러야 한다. 가령 블라인드와 짚 등 재료의 종류가 다르고 작품의 크기가 다르다. 개념적인 작품도, 감성적인 작품도 있다. 형식적, 조형적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 작품이 축적돼 있고 작품의 질을 인정받을 때 이런 전시를 할 수 있어서 굉장히 하고 싶었다.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욕망이 강하다. 그러면서도 이 시점에서 뒤를 돌아보는 것이다. 루드비히 미술관의 전시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 이유다.
-- 내년 전시가 분기점이 될 것 같다. '1기 양혜규'를 돌아보고 2기 양혜규를 준비할 것 같은데.
▲ 루드비히 전시 후 짧게 5년, 길게는 10년간 유럽에서 이런 전시는 하지 않을 것이다.
-- 전에 감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인터뷰했었는데 이번 전시 준비 과정은 새로운 느낌이지 않나.
▲ 허우적거릴 만큼 깊은 감상은 아니지만, 과거의 작품을 돌아보는 과정을 거치니 그런 부분이 있긴 하다. 새롭게 보이는 작품도 있었다. 일례로 독일 관람객을 위해 오디오 더빙 작업을 했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내 목소리가 아니라 작품이 내는 목소리 같았다. 목소리에는 리듬이 있다. 물질적 요소와 비물질적인 요소가 공존한다. 다시 작품을 만드는 것도 특이한 경험이다. 사진 한 장만 남아있는 작품을 다시 만드는 데, 금방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새로웠다.
-- 회화는 작품을 쌓아두면 되는데 설치는 다 해체하니 그런 점도 있나보다.
▲ 그래서 아카이브가 중요하다. 사진만 남아있는 작품의 경우 작가가 죽었다고 생각하면 없어지는 것이다.
-- 베를린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데.
▲ 베를린 팬은 아니다. 전혀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최근 이 도시가 회자되는 게 탐탁지 않다. 도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중요하다. 인도 출신의 비교문학자인 가야트리 스피박 컬럼비아대 교수는 손으로 원고를 쓴다. 몸은 미국에 있지만 시선은 고향의 장애인, 여자 싱글맘, 문맹인을 향해 있고, 그들과의 진정한 소통을 강조한다. 제가 바라보고 있는 게 중요하지 서 있는 곳이 중요하지 않다.
-- 모교인 슈테델슐레의 교수가 된 느낌은 어떤가.
▲ 학교 교수가 된 것도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 같다. 저는 유럽인인도 아니고 여성이다. 학교 다닐 때 루저였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겠지만, 떼를 지어서 캠프를 이루고 있다. 미술계든 물리학계든 마찬가지다. 저는 굉장히 독립적이다. 어디에 속하지 않는다. 백남준 등 해외에서 성공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그런 것 같다. 엄청난 단점이기도 한데, 도리어 임용에 도움이 된 것 같다. 교수 선발에 세대교체의 문맥이 있는 상황에서 계파에 속하지 않은 사람도 필요했던 것 같다.
-- 과거 '중간유형' 작품을 설명하면서 가운데 있는 것들에 대한 가치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는데, 독립적인 점과 연결이 되는가.
▲ 연결이 안 될 수 없지만, 균형과 조화의 의미에서 중간이 아니다. 하이브리드와 통한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마치 중력이 없는 듯한 상태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하는 마법사, 주술사, 무당을 미디움이라고 한다.
-- 한국에서의 전시계획은
▲ 계획이 없다. 적합한 전시장을 만나기가 어렵다. 에르메스 도산파크에 작품('솔 르윗 뒤집기')도 10년을 두겠다고 해서 설치했다.
lkb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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