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달리 정확한 규모 파악 안돼…관련 법·조례 '전무'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직장인 A(32)씨는 20대 시절 온종일 원룸에 처박혀 친구도 만나지 않고 컴퓨터 게임만 하던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섬뜩해진다.
당시 미래에 대한 꿈이나 비전도 없이 온라인 세계에 틀어박혀 몇 달씩 집 밖으로 나가지 않던 그는 입대와 이후 심리 치료를 계기로 겨우 세상 밖으로 나와 취업에 성공했다.
이처럼 일터나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타인과 교류하지 않는 '히키코모리'(引きこもり), 즉 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 조례안이 서울시의회에서 추진돼 눈길을 끈다.
서울시의회는 김미경(더불어민주당·은평2) 의원의 대표 발의로 '서울특별시 은둔형 외톨이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제출돼 소관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의 심의를 앞두고 있다고 17일 밝혔다.
은둔형 외톨이 문제는 이미 이웃 나라 일본에서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도쿄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해 15∼39세 히키코모리 인구를 약 54만1천 명으로 추산했다. 7년 이상 외톨이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이 적지 않은 데다 35세 이상 나이에 히키코모리 생활을 시작하는 이도 늘어나는 등 장기화·고령화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관련 실태조사가 진행된 바 없어 과거의 A씨와 같은 은둔형 외톨이의 현황이나 규모조차 파악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다만 다양한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최소 수십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통계청 경제활동 인구조사 분석 결과 2011년 1월 기준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않으면서 경제활동도 하지 않는 '비구직 니트'NEA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이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조사된 점도 이 같은 추정에 힘을 보태는 부분이다.
김미경 시의원은 "국내 경기 침체와 고용 불안,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은둔형 외톨이를 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며 "이들의 사회적 복귀를 위한 체계적인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은둔형 외톨이를 대상으로 하는 법률이나 자치법규를 운영하는 사례가 전무한 실정"이라며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이 되지 않은 것은 큰 문제"라고 조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례안은 '은둔형 외톨이'를 가리켜 "집이나 한정된 공간에서 일정 기간 이상 고립돼 머무르면서 가족 또는 소수의 특정인 이외의 사람들과는 일체의 교류를 거부하면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고립된 상태로 생활해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특히 곤란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서울시장이 5년마다 '서울특별시 은둔형 외톨이 지원 기본 계획'을 세우고, 이를 위한 지원 위원회를 설치·운영하도록 했다.
또 '은둔형 외톨이 지원센터'를 설립해 ▲ 지역사회 자원의 발굴·연계·협력 ▲ 체계적인 조사·통계·연구 ▲ 은둔형 외톨이 치료를 위한 미술·음악·도시농업 등 교육에 관한 사항 등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 밖에도 이들이 적성과 능력에 맞는 직업 체험·훈련을 할 수 있도록 적성 검사·진로 상담·직업 훈련 프로그램 등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같은 은둔형 외톨이 대책을 입안해 실제로 추진하는 데에는 앞으로 5년간 약 15억5천여만원이 들 것으로 예상됐다.
김미경 시의원은 "은둔형 외톨이는 자칫 개인의 정신적 문제로 치부되기 쉽지만, 이를 넘어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성인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남에 따라 이들의 폭언·손찌검에 시달리는 일부 부모의 문제도 부상하고 있다. 관련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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