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동안 롯데 철권통치…폐쇄적 경영행위에 유죄 판결 오명
(서울=연합뉴스) 강종훈 기자 =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95) 총괄회장이 22일 경영비리 관련 재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지만, 고령과 건강 탓에 법정구속은 면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김상동 부장판사)는 이날 신 총괄회장에 대해 배임과 횡령 혐의 중 일부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지만,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법정 구속하지는 않았다.
올해 95세의 고령인 신 총괄회장은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지해 이동할 뿐 아니라 중증 치매까지 앓고 있다.
비록 유죄는 인정되지만 여러 사정상 정상적인 수감 생활이 불가능하다고 법원이 판단한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법원이 현명한 판단을 내린 것 같다"며 "역사적으로 봐도 100세 가까운 노인을 인신 구속한 사례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1922년생인 신 총괄회장은 한국과 일본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 대기업을 일궈 롯데를 국내 재계 5위 그룹으로 키웠지만, 그의 말년 상황은 매우 우울하다.
장·차남, 장녀, 사실혼녀 등 일가족이 한꺼번에 법정에 섰고, 자신이 일생을 바친 롯데그룹도 큰 위기를 맞고 있다.
그는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롯데그룹을 이끌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2015년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의 경영권 분쟁이 불거진 이후 급격하게 추락했다.
지난 6월 한일 롯데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직에서 배제됐으며, 8월에는 롯데 계열사 중 마지막까지 등기임원 직위를 유지하던 롯데알미늄 이사에서도 물러났다.
이로써 한·일 롯데 모든 계열사 이사직에서 퇴임, 공식적으로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됐다.
경영권 갈등 속에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 문제가 드러났고, 중증 치매 증세로 법정후견인의 도움을 받고 있다.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롯데는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일본기업 논란 등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그 배경에는 롯데를 자신 혹은 가족 소유 기업으로 인식한 신 총괄회장의 경영 방식이 있다.
신 총괄회장은 롯데쇼핑과 호텔롯데 등 주요 계열사를 비상장 기업으로 유지하며 폐쇄적으로 경영했고, 손가락 하나로 롯데의 모든 것을 움직인다는 의미에서 '손가락 경영'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절대적인 권한을 쥐고 있었다.
그러나 후계 구도를 미리 정리하지 못해 경영권 분쟁의 불씨를 제공했고, 이번 경영비리 혐의도 '내 회사는 나의 것'이라는 신 총괄회장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판 과정에서도 신 총괄회장은 "내가 운영하는 회사인데 그게 횡령이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결국 1948년 롯데를 창립한 지 약 70년 만에 막을 내린 '신격호 시대'는 그동안의 경영행위 일부에 대해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리면서 오명으로 얼룩졌다.
재계 관계자는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 법정구속을 면한 것은 다행이지만 70년 동안 롯데를 철권통치했던 그의 경영방식이 평가절하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한국 경제에 기여한 바도 큰 인물인데 비극적 말년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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