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대사 난징 보내고 한중 '역사 동질성' 띄우며 공감대 끌어내
靑 "진정성으로 실리 얻은 외교…'저자세 외교' 주장 이해 안 돼"
우즈벡·스리랑카 대통령 방한때도 '배려'…"역지사지, 대·소국 가리지 않는 원칙"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박경준 기자 = 지난 13일부터 3박4일 간 진행된 문재인 대통령의 첫 중국 방문은 문 대통령 특유의 '역지사지(易地思之) 외교'가 빛을 발한 무대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문제를 이해하고 성찰하는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중국 지도자들의 깊은 공감을 일으켰고, 이것이 사드 갈등으로 얼어붙었던 한중관계를 녹여내는 데 결정적인 훈풍이 됐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이미 중국으로 떠나기 하루 전 관영 CCTV와의 인터뷰를 통해 '역지사지 외교'의 운을 뗐다. 문 대통령은 "한국은 중국의 안보적 이익을 해칠 의도가 없다"면서도 "중국이 안보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염려하는 것에 대해 우리도 역지사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발언은 한중 관계에서 우리만의 이익을 앞세우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거리감을 좁혀 공감대를 형성함으로써 엉킨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문 대통령은 실제 중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행동'으로 역지사지 외교를 보여줬다. 중국에 도착한 당일인 13일이 중국인들이 가장 아픈 역사로 기억하는 난징대학살 80주년임을 감안,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에 영접 나올 예정이었던 노영민 주중대사를 난징 추모 행사장으로 가라고 지시한 것이다.
첫 공식일정인 재중국 한인 간담회에서도 "저와 한국인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난징대학살의)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위로 말씀을 드린다"는 말로 각별한 관심을 표했다.
이에 중국 언론 매체와 학자들은 '문 대통령이 성의를 보였다'며 호평했다.
한중이 공유하는 '항일(抗日)'의 역사로 공감대를 찾으면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언행으로 우호적 감정을 끌어낸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4일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난징대학살 추모 기념식에 주중 한국대사를 참석시켜 줘서 감사하다"고 직접 사의를 표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자신이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와 비교해 그동안 발전하는 모습이 '상전벽해'와 같다고 평가하는 동시에 "지금까지의 만남으로 시 주석이 진정성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라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방중 전 자신이 중국에 몇 번을 다녀왔는지 출입국 기록을 조회해 알려달라고 하는가 하면 A4 용지로 68페이지에 달하는 시 주석의 당 대회 연설문을 정독하는 등 꼼꼼하게 정상회담을 준비했음이 상대에게 전해지는 대목이었다.
시 주석이 추진 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의 거점 도시인 충칭을 방문한 것 역시 상대를 배려한 행보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문 대통령은 중국의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받는 천민얼(陳敏爾) 충칭시 당 서기를 만난 자리에서도 충칭이 초한지와 삼국지의 역사적 배경이 됐다는 점을 언급하며 거리를 좁혔다.
이에 천 서기는 "처음으로 충칭시를 방문하시는 데도 충칭을 중시하고 있음을 느끼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화답했다.
일각에서는 국빈으로 초대한 문 대통령이 세 끼 연속으로 수행원들과 식사하게 하는 등 홀대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런 방식이 지나친 '저자세 외교'가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한다.
이런 비판에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7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어느 대목이 저자세 외교인지 모르겠다"면서 "문 대통령은 진정성으로 실리를 얻은 외교를 보여줬다"고 반박했다.
청와대의 이러한 반박을 뒷받침할 만한 사례로 15일 베이징대에서 했던 연설을 꼽을 만하다.
이날 문 대통령의 연설에는 한중 간 역사와 함께 다양한 한자성어와 삼국지, 칭다오맥주에 이르기까지 '친중(親中) 코드'로 가득했다.
문 대통령은 "중국에서 한류가 유행하지만 한국 내 '중류(中流)'는 더 오래되고 폭이 넓다. 한국의 청년들은 중국의 게임을 즐기고 양꼬치와 칭다오 맥주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급속한 한류 확산에 대한 중국 국민 일각의 거부감을 한국에서 확산 중인 '중류'를 부각함으로써 녹여내려는 뜻으로 풀이됐다.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나 '대국'으로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중국은 단지 중국이 아니라 주변국과 어울려 있을 때 존재가 빛나는 국가"라는 표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중국이 법과 덕을 앞세우고 널리 포용하는 것은 중국을 대국답게 하는 기초"라며 "(그것이) 주변국들로 하여금 중국을 신뢰하게 하고 함께하고자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을 띄우면서도 북핵과 한반도 문제 등 동북아 현안의 해결 과정에서 보다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문 대통령이 외국 정상을 진정성 있게 대하는 태도에 특별히 노력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특히 대국이든, 소국이든 가리지 않고 외국 정상이 방문했을 때에는 '진심'을 다해 예우해주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달 샤프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국빈 방한 때는 방한 기간에 미르지요예프 대통령 둘째 사위의 생일 파티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심야에 문 대통령 명의의 축하 케이크를 깜짝 선물로 보내 우즈베크 측이 감동했다고 한다.
마이트리팔라 시리세나 스리랑카 대통령의 방한 때는 미리 조계사에서 기다리다가 시리세나 대통령과 대웅전을 참배하는 등 상대국 정상의 마음을 얻으려는 노력을 각별히 기울였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진심을 담은 외교는 결국 중요한 외교 현안을 풀기 위한 문 대통령의 방식"이라면서 "이번 방중 기간 '역지사지'의 노력이 있었기에 사실상 중국의 사드보복 철회가 공식화하는 등의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이 관계자는 또 "진심을 보여주며 역지사지의 자세로 접근하는 문 대통령의 외교 스타일은 대국과 소국을 가리지 않는 일종의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rhd@yna.co.kr
kjpar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