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에 예정된 한미 연합군사훈련의 연기 검토 용의를 밝혔다. 19일 평창올림픽 주관 방송사인 미 NBC와의 인터뷰에서다. 문 대통령은 미국에 그런 제안을 했고 미국도 이를 검토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기간까지 추가 도발을 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았다.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훈련은 통상 매년 3월에 진행되는 만큼 평창올림픽 기간은 비켜갈 것으로 보이나, 패럴림픽 기간과는 겹칠 가능성이 크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평창올림픽 기간까지 도발을 멈추면 올림픽의 안전한 개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군사훈련의 실제적인 연기 여부는 "오로지 북한에 달린 문제"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보수진영의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민감한 카드를 꺼낸 것은 국제사회 일각의 안전성 우려를 불식하고 평창올림픽을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는 '평화의 제전'으로 만들기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주최국 정상으로서 마땅한 책무이기도 하다.
한미 군사훈련 문제는 중국이 북·미 간 대화의 장 마련을 위한 중재안으로 일관되게 거론해왔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군사훈련을 동시에 중단하자는 '쌍중단' 방안이다. '쌍중단'을 협상의 출발점으로 삼고 '쌍궤병행'(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을 협상의 종착점으로 삼자는 게 중국의 제안이다. 국내에선, 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가 비판적 여론을 무릅쓰고 유사한 주장을 펴왔다. 그는 지난 9월 독일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세미나에서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은 핵과 미사일 활동을 중지하고, 한미는 군사훈련의 축소 또는 중단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훈련의 중단이나 축소에 대한 미국의 반대 입장은 분명하다. 적법하고 방어 차원인 한미 동맹의 연합군사훈련과 북한의 불법적 핵·미사일 개발은 '등가성'이 없다는 게 미국의 일관된 입장이다.
문 대통령의 제안은 중국의 중재안이나 문 교수의 제안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한미 연합훈련의 중단이나 축소가 아닌 '연기'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고, 연기하더라도 '평창올림픽 기간'에 한정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한미 양국은 우리의 제안을 놓고 군사 당국 채널을 통해 내밀하게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일 정도다. 미국의 기류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미국도 충분히 검토할 만한 사안이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결과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문 대통령의 제안은 '올림픽의 안전한 개최'라는 명분에서나 미국의 수용 가능성에서나 기존의 제안들보다 진전된 것으로 보인다. 이 제안대로 상황이 전개된다면, 올림픽의 안전한 개최 차원을 넘어 최고조에 이른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북미 간, 남북 간 대화 여건도 자연스럽게 조성될 공산이 크다.
관건은 북한이 호응하느냐다. 북한이 핵·미사일 추가 실험 중단을 선언하거나, 평창올림픽 참가 결정을 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국제사회에 각인시키고자 평창올림픽 기간을 이용해 도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이때는 숙고를 거듭해 내놓은 문 대통령의 제안은 무용지물이 되고, 한반도 정세도 극단으로 치닫을 수 있다. 새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북한의 핵 포기를 "강제할 옵션들을 향상시키겠다"고 밝혀, 대북 압박을 한층 강화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해상봉쇄나 원유공급 차단, 선제공격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제는 북한이 결정할 때다. 지금처럼 미국과 군사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극한 대치를 선택할지, 아니면 이쯤에서 체면을 유지하고 대화를 모색할지 말이다. 문 대통령의 이번 제안은 설사 북한과 미국의 호응이 없어 실현되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외교공간을 넓히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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