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컨버전스'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1. 1910년대 미국의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앤드루 더글러스는 태양의 흑점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그는 11년 정도마다 태양의 흑점 활동이 최고조에 달하며 그때마다 지구가 폭풍우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폭풍우의 시기 식물과 나무는 평균을 웃도는 수분을 얻을 수 있다. 더글러스는 1년에 하나씩 생겨나는 나이테들의 두께가 동일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한 결과 흑점 활동이 왕성할 때는 나이테가 넓게 형성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천문학과 기상학, 식물학이 상호 연관되는 셈이다. 더글러스의 발견은 이후 나이테를 비교해 목재를 벌채한 연대를 측정하는 '나이테연대학'이란 새로운 과학의 탄생으로 이어지면서 식물학과 고고학을 연결했다.
#2. 영국의 소아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였던 존 볼비는 1951년 오스트리아의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의 '각인' 학설을 접하게 됐다. 특정 시기 새끼 오리들에게 움직이는 물체를 보여주면 어미처럼 인식해 성인이 될 때까지 따라다니는 것에서 발견한 이론이다. 볼비는 이를 토대로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 영아와 주 양육자 간에 형성되는 강한 정서적 결속인 애착이 이후 영아의 생존과 발달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애착이론'을 제시했다. 소아과학과 동물행동학의 결합으로 새로운 이론이 탄생한 것이다.
신간 '컨버전스'(책과함께 펴냄)는 이처럼 다양한 과학 분야를 중첩해 새로운 발견을 이뤄낸 사례들을 통해 현대 과학사를 바라보는 책이다.
영국 언론인 출신으로 학문 간 크로스오버에 주목해온 피터 왓슨이 컨버전스를 키워드로 현대 과학사를 이야기한다.
'수렴'으로 번역되곤 하는 '컨버전스'(convergence)는 여러 가지 것들이 통일이나 단일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 혹은 여러 기술이나 성능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뜻한다. 통섭, 융합과도 맥이 닿아있는 개념이다.
책은 1850년대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현대 과학의 컨버전스가 바로 이 시대에 시작됐다고 본다. 이 시기 여러 사람이 동시에 발견한 열역학 제1법칙인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대표적인 사례다. 에너지 보존 법칙의 발견은 열, 광학, 전기, 자기, 음식과 혈액의 화학작용에 관한 과학들이 융합된 결과였다. 진화론이 나온 것도 이 시기다. 진화론 역시 천문학과 지질학, 고생물학, 인류학, 지리학, 생물학 등 여러 과학이 융합돼 결실을 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이런 점을 들어 1850년대가 여러 면에서 과학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10년간이며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흥미진진한 지적 전환이 이뤄진 시기라고 표현한다.
책은 이런 관점에서 1850년대 이후 과학사의 중요한 순간들이 컨버전스를 통해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책의 서술 방식 역시 여러 분야를 넘나든다.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제시하면서도 특정 분야의 한 과학자가 어떤 지식을 발견했는지 단순히 사례 중심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지식이 다른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또 이를 토대로 어떤 분야의 과학자가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게 됐는지를 꼬리를 물며 서술한다. 탐사보도기자로 활동했고 케임브리지대학 맥도널드 고고학 연구소에서 10년간 연구했으며 미술에도 조예가 깊고 소설도 여러 편 발표하는 등 다양한 분야를 오가는 저자의 배경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이광일 옮김. 704쪽. 3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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