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회, 국내 첫 조례제정…"법적 문제없다" vs "위법하다"
(제주=연합뉴스) 변지철 기자 = 내년 70주년을 맞는 제주4·3 희생자추념일이 지방공휴일로 지정돼 봉행될 수 있을까.
국가기념일인 제주4·3 희생자추념일을 지방공휴일로 지정하기 위한 조례안이 21일 제주도의회를 최종 통과했다. 국내에서 조례로 지방공휴일을 정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행 법령에 지방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제주에만 한정된 공휴일 지정이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엇갈린 의견이 나오고 있다.
◇ 지방공휴일 지정 전국 첫 사례
제주도의회 제357회 임시회 본회의를 통과한 '제주특별자치도 4·3희생자추념일의 지방공휴일 지정에 관한 조례안'은 4·3추념일인 매년 4월 3일을 지방공휴일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추념일에 맞춰 전 도민이 함께 희생자를 추념하며 도민 화합과 통합을 도모하고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의 4·3 정신과 역사적 의미를 고양·전승·실천함으로써 4·3의 해결과 세계평화의 섬 조성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례안에서 말하는 지방공휴일은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를 처리하는 기관이 공식적으로 쉬는 날'을 의미한다.
적용대상은 제주특별자치도 본청과 하부 행정기관, 제주특별자치도 직속기관 및 사업소, 제주특별자치도 합의제행정기관 등이다.
조례안은 이에 대한 도지사의 책무로 '4·3희생자추념일의 공휴일 지정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도민과 각 기관 단체 등이 공휴일 시행에 참여할 수 있도록 권고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4·3희생자추념일을 전국 첫 지방공휴일로 지정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가 제기됐다.
우선 4·3의 완전해결을 위해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를 제도적으로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함이다. 진상규명·피해회복·재발방지책 마련 등 미완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도민 상당수가 4·3희생자 유족이거나 친족 관계로 얽혀 있는 제주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근무와 학업 문제 때문에 4·3희생자추념식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제주도의회가 올해 10월 25일부터 11월 13일까지 제주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8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주4·3에 대한 인식 및 해결과제에 대한 도민 여론조사 결과' 제주 4·3과 관련한 행사에 참여 경험을 묻는 말에 76.4%가 '참여한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유족이 아닌 경우 80.6%가 참여 경험이 없었고, 유족인 경우에도 절반 가까이 되는 44.7%가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 앞으로 도민 참여를 유도할 방안을 마련이 시급하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 법적 문제없다 vs 위법하다
대한민국의 현행 법령에서 공휴일은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등에 의해 정해진 날이다.
현재 한국의 국가기념일(명절 등 제외)은 공휴일인 국경일(3·1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공휴일이 아닌 국경일(제헌절), 공휴일인 법정기념일(어린이날, 현충일), 공휴일이 아닌 법정기념일(식목일, 근로자의 날, 어버이날 등 45개)로 크게 나뉠 수 있다.
4·3희생자추념일은 공휴일이 아닌 법정기념일로 분류된다.
이번 지방공휴일 추진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휴일이 아닌 특정한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만 공휴일로 지정하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현행 대한민국 법령에서 지방공휴일에 관한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방공휴일을 조례로 지정할 수 있는지를 법적으로 검토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전문가 사이에 의견이 엇갈린다.
'문제없다'는 측은 지방자치법은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그 사무에 관해 조례를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다른 법령에도 지방공휴일을 지정할 수 없다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만큼 지방공휴일을 지정해 운영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사무에 해당한다고 본다.
반면, 법령의 위임 없이는 조례로 지방공휴일을 지정하는 것은 위법하다고 보는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공휴일 지정과 운영은 국민의 생활은 물론 국민의 권리·의무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이기 때문에 반드시 법령으로 정하거나 조례로 정할 때는 법령의 위임이 있어야 한다는 견해다.
제주도는 양측의 의견을 모두 수렴하면서 중앙정부와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도는 조례안 제정 취지와 목적에 동의하고 지방공휴일 지정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국적으로 지방공휴일 지정이 추진된 적이 없고 지방공휴일을 조례로 제정할 수 있다는 위임 법령이 없어서 중앙정부에서 조례 재의 요구를 하거나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4월 제350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 도정질문에서 "현재 지방공휴일을 제정하는 제도가 우리나라에는 없다. 도가 못 받아들일 이유는 없지만 효력이 문제"라며 중앙정부 차원에서 제소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4·3희생자추념일의 지방공휴일 지정이 확정된다면, 특정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이 깊이 투영된 국가기념일인 3·15의거기념일(창원), 5·18민주화운동기념일(광주) 등이 지방공휴일 지정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조례는 관공서만 쉴 수 있도록 규정하고 나머지 기관에 대해서는 참여를 권고하는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학교 등 교육기관과 은행, 일반사업체 등 각 기관의 동참을 얼마나 끌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bjc@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