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SDI에 삼성물산 지분 904만2천758주 중 500만 주만 매각하도록 명령한 근거인 가이드라인을 바꿨다. 공정위는 두 차례의 전원회의 논의를 거쳐 합병 당시 발표한 '신규 순환출자 금지법 집행 가이드라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내용을 변경하기로 했다고 21일 밝혔다. 순환출자란 A사→B사→C사→A사로 연결되는 고리형 출자 구조를 일컫는다. 대기업집단의 총수가 적은 지분으로 고리 안의 전체 계열사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결과를 새로운 순환출자의 '형성'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기존 순환출자의 '강화'로 볼 것인지가 핵심이다. 합병 당시 가이드라인은 두 회사 합병 결과를 순환출자의 '강화'로 규정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 가이드라인이 법 해석 범위를 넘어선 오류라고 했다. 공정위의 이번 결정이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 지배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정위 실무자들 사이에선 애초에 '형성'으로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강화' 쪽이었다. 공정위는 이렇게 바뀌는 과정에서 삼성의 청탁에 따라 청와대 등의 부당한 외압이 있었다고 봤다.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에 대한 1심 재판부도 합병 당시의 가이드라인 수정에 대해 "삼성의 청탁이 성공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국회에서도 기존 가이드라인이 부당한 외압에 의해 바뀐 것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가이드라인이 아닌 법적 형태를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공정위가 변경된 가이드라인을 '예규'로 만들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 고리에서 이뤄진 합병 결과가 애초에 순환출자 '형성'으로 판정됐으면 삼성SDI는 보유 중이던 삼성물산 주식 904만2천758주를 전량 팔아야 했다. 그런데 당시 공정위의 '강화' 결정 덕에 500만 주만 매각했으니 나머지 404만2천758주를 추가로 처분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는 20일 종가 기준으로 5천276억 원어치다.
삼성은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상당히 당혹스러워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가 지분 매각에 6개월의 유예기간을 둔 만큼 정부나 국회 차원에서 후속 조치를 논의할 때 의견을 제시할 것이라는 말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이 균열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당장은 아닐지 몰라도 보험업법이 개정되거나 금융 통합감독시스템이 도입되면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8.19%)을 전량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 부회장은 자신이 최대주주인 삼성물산 주식 갖고 지금 같은 지배력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삼성이 소급적용 등의 문제를 걸어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공정위가 뒤늦게나마 잘못된 부분을 인정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불과 2년 만에 스스로 내린 결정을 뒤집은 셈이어서 신뢰성 훼손은 감수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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