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화재 참사 이제 그만] ③ 안전은 공짜가 아니다

입력 2017-12-22 17:04  

[대형화재 참사 이제 그만] ③ 안전은 공짜가 아니다
일상에 재난 위협 도사려…민간 주도 재난극복 노력 필요

(수원=연합뉴스) 최종호 기자 = 시민이 자주 찾는 시설에서 대낮에 일어난 제천 화재 참사는 생사를 가르는 재난의 위협이 실생활에 상존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운다.



또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관련법을 고치고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물론 정부 차원의 재발 방지 노력이 필수적이나 국민 개개인도 일상에서 안전을 해치는 요소를 하나하나 줄이는 작은 노력을 전개해야만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도처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작업장·생활공간서 잇단 사고
건물 내부 스프링클러가 제때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는 올해 2월 경기도 화성에서 4명의 목숨을 앗아간 메타폴리스 부속상가 화재를 떠오르게 한다.
당시 시설관리 업체는 오작동에 따른 민원을 우려해 스프링클러와 경보기, 방화벽 등 소방시설을 평소 꺼놨다가 피해를 키웠다.
화재 원인은 불티가 튀는 것을 방지하는 덮개 등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한 화재 예방을 위한 조치를 전혀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진 용단 작업으로 드러나 총체적인 인재로 결론 났다.
각각 9명과 8명이 숨진 고양종합터미널 화재(2014년)와 서이천물류창고 화재(2008년) 역시 가연성 소재가 가득한 실내에서 용접·용단 등 불꽃작업을 하다가 벌어졌다.
2008년 1월 이천 냉동창고 화재 참사는 곳곳에 쓰인 불에 취약한 건축자재와 폐쇄적으로 설계된 건물 구조가 40명이 사망하는 참사로 이어졌다.
같은 해 12월 이곳에서 불과 6㎞ 떨어진 물류센터에서는 적절한 안전조치 없이 용접작업을 하다 튄 불똥이 불에 약한 건물 벽 샌드위치 패널을 타고 화마가 돼 6명이 사망하는 판박이 사고가 나기도 했다.



이 같은 안전불감증은 일상생활에도 만연해있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센터에 따르면 담배꽁초, 빨래삶기, 폭죽놀이 등이 원인이 된 부주의로 인한 화재는 지난 1년간 2만3천284건 발생해 74명이 사망하고 774명이 다쳤으며 1천억여 원의 재산피해가 났다.
화재뿐만 아니라 최근 연이은 타워크레인 사고도 부품을 제대로 쓰지 않아 발생하는 등 대부분 안전을 무시한 결과로 나타났다.
정부는 1994년 성수대교 붕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와 대구 지하철 화재 등 잇따른 대형사고 계기로 매월 4일을 안전 점검의 날로 지정하고 관련 행사를 법제화하는 등 사회 전반의 안전실천 생활화에 힘쓰고 있지만, 비극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 제천·의정부 참사 모두 1층서 불…관련법 강화 목소리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다중법), 재난안전관리기본법 등 관련법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참사가 이어진다는 목소리도 크다.
이번 제천 화재 참사의 경우 알려진 대로 1층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에서 난 불이 건물로 옮겨붙어 발생한 것이라면 2015년 의정부 대봉그린 아파트 화재와 판박이다.
당시 1층에 세워진 오토바이에서 시작된 불길이 삽시간에 건물 꼭대기 10층까지 번지고 옆 건물에도 옮겨붙어 4명이 사망하고 135명이 다쳤다.
이처럼 1층에서 불이 나 대형 인명 피해를 유발한 사례가 있음에도 다중법은 2층 이상에 위치한 일반음식점·휴게음식점·제과점·PC방·게임제공업 등 5개 업종의 안전시설 설치, 정기 점검 등의 의무화만 규정하고 있다.
1층에 있는 이들 업소는 불이 나더라도 손쉬운 대피가 가능하다는 막연한 추정에 따라 이런 의무에서 벗어난다.



재난안전관리기본법 역시 이들 업소에 대해 의무적으로 재난보험에 가입하도록 할 뿐 소방점검이나 시설개선 등 재난 예방에 관한 규정은 따로 두지 않고 있다.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 이윤호 사무처장은 "중소 영세업자들의 보험금 부담 등을 고려해서인지 다중법 등 관련법의 이런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요즘은 고층 건물이 많아 1층 사고가 더 위험해지고 대형화하고 있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건물 외벽 마감재로 불연재 사용을 의무화한 건축법 역시 현장에서는 비용, 관리·감독 허술 등의 문제로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안전은 공짜라는 의식 문제…시간·비용 투자해 확보해야"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시민 스스로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수도권의 한 소방서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는 판단력"이라며 "급박한 상황에서는 평소 알고 있던 부분도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평소에 대피로 등에 대한 반복적인 숙지와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소방서장은 이 같은 대피 훈련 등이 관 주도로 이뤄지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누가 지켜주겠지, 구조해주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을 가지면 안된다"며 "아파트 단지 차원이나 몇몇 이웃끼리 혹은 한 가정 내에서라도 자신이 있는 곳에서 화재 등 재난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움직인다는 계획을 갖고 훈련하는 민간 주도의 재난 극복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난안전기술원 송창영 이사장은 "동일본 대지진 당시 생존자들을 조사해보니 2%만 구조된 경우이고 나머지는 모두 스스로 생존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시민 개개인이 확실한 안전의식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송 이사장은 "지난해 우리나라 재난인프라에 투입된 돈이 17조5천억원인데 전체 예산비율로 따졌을 때 일본은 우리의 1.7배, 미국은 4배가량을 쓰고 있다"며 "정부도 국민안전 분야에 신경을 더 써서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고도 했다.
안실련 이 사무처장은 "화재시 행동요령, 고층건물 대피방법, 심폐소생술 등은 인터넷을 찾아보면 쉽게 접할 수 있다"며 "안전은 공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관련 기관을 찾아 교육을 받거나 필요한 장비를 구입하는 등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 자신의 안전은 스스로 찾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zorb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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