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은 '치욕절', 인조 눈 뿌려도 '중벌'…전통명절 진흥 공정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최근 중국에서 서방문화의 침투를 저지해야 한다는 논리로 '성탄절 보이콧' 주장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중국 문화예술 정보 사이트 더우반(豆瓣)은 최근 선양(瀋陽) 약과대학의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위원회가 성탄절을 비롯한 서양 종교와 관련된 활동 참가를 금지했다고 23일 전했다.
통지문은 "최근 서양 문화와 관련된 기업들의 광고 조작과 그릇된 인터넷 여론의 영향으로 일부 젊은이들이 맹목적으로 서방 명절을 따르고 있다"면서 특히 '크리스마스 이브'와 성탄절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선양약대 공청단은 이에 따라 "문화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서양 종교문화의 침투를 자각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모든 서방 종교명절 관련 행사 개최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매년 12월이면 중국 사회에 성탄절을 명절로 지내야 하느냐 문제로 논쟁이 벌어지곤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공청단과 대학을 중심으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비전에 고취돼 성탄절 문화를 배격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안후이(安徽)성 공청단은 지난 17일 웨이신(微信·위챗)을 통해 중국이 과거 서방열강의 침략을 당한 역사를 거론하며 성탄절을 중국의 '치욕절'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일부 지방에서는 중국 공산당원이 서양명절 관련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금지했다고 대만 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후난(湖南)성 헝양(衡陽)시의 기율검사위 당국은 당원간부의 직계 가족까지 포함해 성탄 전야 모임이나 성탄절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지시를 내렸다.
헝양시 공안국은 통지를 통해 성탄절 기간 검문, 취조, 순찰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며 도심 구간에 진입하는 사람은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인조 눈꽃을 팔거나 뿌리는 사람은 '중벌'을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이징 한 국유기업 직원도 환구시보에 "올해 들어 이와 비슷한 통지를 받았다"며 "과거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는 성탄절이 법정 공휴일이 아니다. 신중국 성립 이후 종교를 배격하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죽의 장막'을 치고 있던 중국이 본격적으로 크리스마스 문화를 접한 지는 1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근래 들어 상하이 등 대도시의 도심 상가에 트리 등 성탄 장식이 거리를 메우고 호텔, 음식점도 크리스마스 이벤트와 파티 행사를 열고 있지만 종교적 의미가 거의 없이 평일과 다름없는 분위기가 이어진다.
'성탄절 배격' 풍조는 중국 전통명절에 대한 강조로 이어진다.
지난 1월 중국 공산당 중앙판공청과 국무원 판공청은 '중화 우수전통 문화 전승발전 공정 실시에 관한 의견'을 제시해 중국 전통명절 진흥 공정을 실시한다고 밝힌 바 있다.
춘제(春節·설), 원소(元宵·정월대보름), 청명(淸明), 단오(端午), 칠석(七夕), 중추(中秋·추석), 중양(重陽) 등 명절의 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새로운 세시풍속을 만들어가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시베이(西北)대 현대학원은 2014년 성탄절에 학생들에게 금지령을 내려 성탄절 당일 모든 학생들이 단체로 '중화 전통문화 선전 영상'을 관람토록 하고 관람에 응하지 않은 학생은 3차례 무단결석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위협했다.
학교 측은 웨이보에 단체 영상관람은 학생들이 맹목적으로 외국 문물을 숭상하지 않고 중국 전통문화를 중시하기를 바라는 뜻에서였다고 주장했다.
당시 대학 캠퍼스에는 "저속한 서양문화를 반대한다", "서양문화의 확산을 저지한다" 등의 플래카드가 붙었다.
성탄 문화의 배격에도 중국은 전 세계 성탄 장식 용품의 3분의 2를 생산하며 돈을 벌고 있다.
세계 최대 소상품 제조기지인 저장(浙江)성 이우(義烏)시에서는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600여개 공장이 30억 달러에 달하는 크리스마스 물품을 생산해 수출했다. 산타클로스를 주제로 한 물품과 트리 등에 장식되는 LED 전등이 주 품목으로 이우시는 '크리스마스 빌리지'라는 별칭까지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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