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스포츠센터 불길 속 목숨 구한 '의로운 영웅들'

입력 2017-12-24 07:03  

제천 스포츠센터 불길 속 목숨 구한 '의로운 영웅들'
민간 스카이차로 3명 극적 구조…비상구로 탈출 도운 이발사
갇힌 여성들 목숨 걸고 구한 할아버지와 중학생 손자

(제천=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당시 불길이 번지는 다급한 순간에도 단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시민들의 뒷이야기가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21일 오후 3시 53분께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를 접수한 뒤 7분여 뒤 119 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소방대는 눈앞에 보이는 불길을 잡느라 1시간 가까이 제대로 된 구조작업을 하지 못했다.
8층 베란다 난간에는 남성 3명이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이때 고가 스카이 차 한대가 이 건물에 접근,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던 시민들을 극적으로 구조했다.
이 스카이 차를 끌고 온 사람은 소방대원이 아니라 일반 시민이었다.
제천 카고 스카이의 이양섭(54) 대표는 불이 나자 아들과 함께 회사 스카이 차를 화재 현장에 긴급 투입, 3명의 소중한 생명을 구해낼 수 있었다.
이씨는 "큰불이 났는데 건물 옥상에 여러 명이 매달려 구조를 요청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스카이 차를 몰고왔다"고 말했다.
이씨에 의해 구조된 3명은 가벼운 부상을 당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불길이 번지면서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던 건물 내에서도 시민들의 용기는 빛났다.
3층 남성 사우나에서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던 것은 이곳에서 오랜 기간 일한 이발사 김종수(64)씨의 역할이 컸다.

그는 화재 비상벨이 울리고 창밖에서 불길과 연기가 치솟자 우왕좌왕하는 사우나 이용객 10여명을 이발실 옆 비상계단으로 신속히 유도, 무사히 탈출할 수 있게 했다.
김씨는 혹시 대피를 못 한 손님이 있을까 봐 3층에서 5분가량 더 머물다 연기를 흡입, 건물을 빠져나온 뒤 병원 신세를 졌다.
김씨는 "평소 비상구를 개방해 놔 쉽게 피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4층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다 대피 중이던 70대 할아버지와 중학생 손자도 2층 계단 창문을 통해 많은 여성을 구출했다.
이날도 평소처럼 헬스장에서 운동하던 이상화(71)씨는 불이 나자 손자 재혁(15)군과 함께 탈출구를 찾아 건물 아래로 내달렸다.
이들이 2층에 다다랐을 때 창문 너머로 갇혀 있는 여성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은 급한 마음에 화분을 창문에 집어 던졌다. 하지만 창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 이들은 창문을 아예 뜯어내고, 여성들을 한 명씩 끄집어냈다.
이렇게 이들이 목숨을 걸고 구해낸 사람은 15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불이 난 건물 앞 도로에 불법 주차된 차량 때문에 소방 사다리차가 접근하지 못하자, 주변에 있던 시민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달려들어 소방대원들과 함께 차량을 빼내 길을 트기다 했다.
지난 21일 발생한 대형 화재로 이 스포츠센터 이용객 29명이 숨지고, 36명이 다쳤다.
많은 목숨을 앗아간 참사였지만 화마가 번지는 위험 속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고 구출에 나선 의로운 영웅들 때문에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jeonc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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