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성탄절 전날 치러진 영결식은 그 이질감만큼 슬픔을 더했다. 하늘도 안타까운 듯 철 잊은 겨울비를 뿌렸지만, 유족들의 복받치는 슬픔과 오열은 달래지 못했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로 사망한 희생자들 가운데 19명의 영결식이 24일 제천, 충주, 광주 등에서 엄수됐다. 특히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했던 김현중(80)·민윤정(49)·김지성(18) 3대와 '봉사 천사' 정송월(51) 씨도 눈물바다에서 이승에 작별을 고했다. 희생자들은 그렇게 무심한 듯 영면에 들었지만 남은 이들의 망각까지 허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엔 이번 참사의 상처가 너무 참담하고 우리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이 무겁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틀 전 제천에 내려가 사고 현장을 둘러보고 희생자 유족들을 위로했다. 문 대통령은 빈소에서 넋이 나간 듯한 유족의 손을 일일이 잡아 주며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일부 격앙된 항의도 터져 나왔지만 문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으로 끝까지 유족들의 하소연을 경청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문 대통령이) '유가족의 욕이라도 들어드리는 게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일'이라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울먹이신다"고 적었다. 문 대통령의 이런 마음이 이번 사고를 수습하고 대책을 세우는 과정에 충실히 담아지기를 바란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인명사고가 잇따라 국민 여러분께서 참혹한 심정이실 것이다. 국정을 책임지는 저로서도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면서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 더 세밀하게 살피고 확실히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24일 제천시청 재난상황실을 방문해 화재 상황과 피해수습 대책을 보고받은 자리였다. 이 총리는 또 "이런 일이 다시 생기지 않게 철저한 조사, 의혹이 남지 않는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정부의 잘못이건, 민간의 잘못이건 규명해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총리는 '현장에서 목숨 걸고 진화와 구조를 위해 노력한 일선 소방관들의 헌신적 노력'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소방당국의 초기 진화 방법이 부적절했다는 일각의 논란을 의식한 것 같다. 물론 화재 원인과 진화 과정에 대한 조사가 완료되면 따로 그런 부분도 판단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슬픔을 위로하고 사고를 수습하는 데 전념할 때다. 아물지도 않은 상처를 다시 들쑤시는 소모적 논쟁은 당분간 자제하는 것이 좋다.
대형 안전사고가 날 때마다 '인재'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불법 주차 차량 때문에 소방장비의 접근이 늦어지는 것은 이제 거의 일상사가 됐다. 이번 제천 화재도 예외는 아니다. 불이 난 건물에는 356개의 스프링클러가 설치됐지만 정작 필요할 땐 하나도 작동하지 않았다. 1층 로비의 스프링클러 알람 밸브가 폐쇄돼 있었기 때문이라니 기가 막힐 일이다. 무려 20명의 희생자가 난 2층 여성 사우나의 비상구 통로는 철제 선반으로 막혀 있었다. 7층으로 허가 난 건물에 8층과 9층을 증축했는데 9층은 아예 불법이었고 한다. 건물주와 관리자의 안전불감증도 문제지만 당국의 관리·감독 부실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화재 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소방 관련 법안이 여러 건 국회에 계류돼 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예를 들면 소방차 등 긴급자동차의 원활한 통행을 위해 주정차 특별금지구역을 지정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공동주택에 소방차 전용 주차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하고, 소방공무원의 소방활동 중 손해가 생겼을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만 소송을 제기하게 하는 법안 등이다. 국회도 이번 참사를 계기로 소방 등 민생 법안 처리의 신속한 처리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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