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개성 있는 작품 세계를 펼쳐온 윤이형(41) 작가가 첫 장편소설 '설랑(說狼)'을 내놨다.
출판사 나무옆의자의 로맨스소설 시리즈로 로맨스를 전면에 내건 작품이어서 더 눈길을 끈다. 그간 SF적 소재를 종종 끌어와 독특한 상상력을 펼쳐 보인 이 작가의 로맨스는 어떤 색깔일까.
역시 평범한 사랑은 아니다. 우선 여성과 여성 간의 퀴어 로맨스라는 점이 그렇고, 소설을 쓰는 작가와 작가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도 남다르다. 게다가 꿈속에서의 환상이긴 하지만, 늑대인간이 등장하는 점도 흥미롭다. 소설 제목 설랑은 '이야기 쓰는 늑대'라는 뜻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서른네 살 여자 '한서영'이다. 그녀의 직업은 작가다. 5년 전 데뷔한 뒤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있는 독특한 시리즈 '스틸 라이프'를 열두 권 냈다. 이 작품을 좋아하는 팬들도 꽤 있지만, 정작 작가인 그녀 자신은 이 작품을 흉물 취급한다. 이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 때문이다. 그녀는 2년 전부터 보름달이 뜨는 밤이 되면 꿈을 꿨는데, 그 꿈속에서 자신이 늑대인간이 되어 사람을 해친다. 그 희생자가 되는 사람은 그녀가 현실 속에서 연애를 하는 상대방이다. 그녀는 이런 꿈을 꾼 뒤 사귀던 사람과 헤어지고 그 사람의 삶을 내밀하게 그린 소설을 썼다. 그녀는 이 책이 죽은 사람의 잔해가 담긴 유골함이라며 괴로워한다.
그녀가 이런 일을 그만두려 결심할 무렵, '최소운'이라는 촉망받는 젊은 작가로부터 이메일을 받는다. 새로 창간하는 무크지에 원고를 청탁하고 싶다며 저녁 식사 자리에 초대한 것이다. 서영은 이전부터 매우 좋아하던 작품의 작가인 최소운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이 자리에 나간다.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강렬하게 끌리고, 몇 번의 만남 뒤에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늘 자신감에 넘치고 소년 같은 매력을 지닌 소운은 서영에게 성큼 다가가지만, 자신감이 부족하고 자기 자신을 사랑해본 적도 없는 서영은 마음을 열지 못한다. 또 작가로서 성공 가도를 걷는 소운의 옆에서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며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한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에 위기가 오고, 서영은 꼭꼭 숨겨둔 어린 시절의 상처를 털어놓는다. 소운은 서영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서영은 작가로서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이 소설은 본격 로맨스 소설답게 사랑이 시작될 무렵의 설렘과 걱정, 사랑이 무르익는 동안의 희열과 포만감, 사랑이 고비를 맞을 때의 불안과 위태로움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또 주인공인 작가들이 정신적 교감을 나누며 좋아하는 작품이라고 얘기하는 여러 소설의 목록을 따라가는 여행도 흥미롭다.
윤이형 작가는 책 말미 '작가의 말'에 "어린 시절부터 늑대인간을 좋아했다", "서로가 서로의 팬인 두 작가가 만나는 이야기를 언젠가 꼭 한번 써보고 싶었다", "진지하고 뜨겁게 사랑하는 여자와 여자의 이야기도 그랬다. 세 가지 이야기를 엮었더니 굉장히 말랑말랑한 어린 날의 꿈 같은 기억들이 마구 밀려왔다"고 썼다.
이어 "내게도 언젠가 있었던 낭만적 사랑의 첫 순간들을, 그 마음의 온도를 다시 경험할 수 있어 감사했다. 감정들은 아득할지언정, 사랑이란 상태가 아니라 서로가 성장할 수 있도록 마음과 시간을 쓰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오래된 내 믿음은 그대로다"라고 덧붙였다.
236쪽. 9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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