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인하 "천둥호랑이 별명, 마음에 꼭 들어…환갑 목전의 선물"

입력 2017-12-26 11:05   수정 2017-12-26 12:08

권인하 "천둥호랑이 별명, 마음에 꼭 들어…환갑 목전의 선물"
태연의 '만약에' 부른 영상 유튜브 150만 뷰…"젊은층과 소통, 제2의 인생 열렸다"
시원한 고음으로 절규하듯 노래하는 모습 '천둥 호랑이 창법'으로 화제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누가 붙였는지 포인트를 잘 짚은 별명이다. 천둥 호랑이.
'비 오는 날의 수채화'로 유명한 1980년대 인기 가수 권인하(58)가 젊은층에 '천둥 호랑이'라는 재미있는 수식어로 친근한 '아재'가 됐다. 그가 2년여 전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소녀시대 태연의 '만약에'를 부른 영상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와 유튜브에 퍼지면서다. 그가 눈을 질끈 감고 절규하듯 노래하는 창법을 본 누리꾼들이 천둥 치듯 포효하는 호랑이에 빗대며 크게 화제가 됐다.
이 영상은 2015년 8월 '스페이스 공감'이 당시 미공개 방송분을 인터넷에 공개한 것으로 26일 현재 조회수가 153만 건을 넘어섰다. 이를 계기로 그가 박효신과 듀엣한 '그것만이 내 세상' 등 과거 영상이 재조명됐고, '모든 노래를 천둥 호랑이화 시켜서 부르는 권인하'란 노래모음 영상까지 등장했다.
그러자 '이런 부장님이면 회식 간다', '저 나이에 저 창법에 저 정도 목 관리면 레알 국보급 성대 아니냐?', '이분이 천둥 호랑이가 사람으로 환생하셨다는 분 맞나요?', '상남자가 노래하는 법', '천둥 호랑이 실화냐' 등 젊은층의 재기발랄한 댓글이 쏟아졌다.
호응에 힘입어 권인하는 올해 김범수의 '보고싶다'와 멜로망스의 '선물' 등 젊은층에 사랑받는 노래들을 다시 불러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리고 누리꾼의 댓글에 답글을 달면서 소통하고 있다. '권인하' 채널 구독자 수는 1만1천명이 넘었다.
최근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권인하는 "이런 일로 인터뷰를 하는 건 처음"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천둥 호랑이 창법이란 수식어가 마음에 꼭 든다"며 "어떤 분이 이렇게 멋있는 별명을 붙여줬는지 모르겠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이어 "그 수식어 덕에 여러 의미로 제2의 인생이 열렸다"며 "가수로선 젊은이들과 소통하는 첫 문이어서 소중하게 여겨진다.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60세인데 환갑을 목전에 둔 선물 같다. 올해 나에게 가장 큰 선물은 유튜브와 SNS에서 만난 젊은 친구들"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만약에'를 부른 영상이 유튜브 150만 뷰를 넘어 놀랐다.
▲ 유튜브에 앞서 페이스북에서 화제가 됐다더라. 지난해 초 아들(27)이 '아빠, 페이스북 어느 페이지에 한번 가보라'고 했다. 당시 이미 영상 조회수가 250만 회가 넘어 놀랐다. 사실 '만약에'를 처음 부른 것은 2015년 4월 MBC TV '복면가왕'이었다. 다른 가수의 곡을 불러야 했는데 아들이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노래를 추천했다. 이후 출연한 '스페이스 공감'에서 앙코르곡으로 불렀는데 그 영상을 좋아해 주셨다. SNS에서 '천둥 호랑이 창법'으로 회자한 것은 좀 됐다.
-- 새로운 별명이 생겼는데.
▲ 기분이 좋은 것은 나와 세대가 다른 친구들이 친근하게 여기며 호응해줬다는 점이다. 요즘은 행사장이나 공연 가면 '저 아저씨 천둥 호랑이다'라고 얘기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 공연하면 관객도 이전보다 젊어진 것 같다.
-- 진성으로 고음을 시원하게 쏟아내는 창법이 포인트가 됐다.
▲ 감정을 끌어올린 소리는 울림이 좋다. 그 힘은 바로 압축력이다. 얼마나 소리가 안에서 압축돼 나오느냐가 멀리 가느냐의 문제인데 그런 부분을 캐치해 준 것 같다. 난 성대를 증폭해 진성으로 소리를 낸다. 보통 메탈 쪽에서는 가성을 거칠게 만들어서 샤우팅 비슷하게 소리를 만드는데, 진짜 샤우팅은 성대를 울려 압축된 호흡으로 소리를 올곧게 뻗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가성을 잘 냈는데 거친 소리를 쓰다 보니 가성이 잘 안된다. 가성을 쓰기 어렵지만 오래 노래하면서 노하우가 생겼고 목소리는 다행히 가장 늦게 노화가 오는 부분이다.



-- '만약에'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던데.
▲ 조금 더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다. '정말 바보 같아서 사랑한다 하지 못하는 건 아마도/ 만남 뒤에 기다리는 아픔에 슬픈 나날들이 두려워서 인가봐'란 가사의 애절함을 조금 더 아프게 표현하고 싶었다. 젊은 세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지만, 중년에게도 절절한 감정은 있지 않나. 애절하고 잔잔하게 가다가 뒤에는 파도치듯 몰아치는 구성으로 불렀다. 아마 원곡과 다른 분위기의 노래가 돼 있으니 '할아버지가 이렇게 불러?' 한 것 같다. 하하.
-- 중견 가수로는 이례적으로 멜로망스의 '선물'까지 커버하며 유튜브에서 친근하게 소통한다.
▲ 공연 영상을 찍는 지인의 제안으로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는데, 직장인 초년생인 아들이 옛날 영상만 있으면 재미없으니 채널을 그냥 두지 말라면서 어느 날 공연 준비할 때 연습한 '보고싶다' 영상을 올려놓았더라. 집에선 내 매니저인 아들이 다른 곡을 추천하며 불러보라고도 했다. '선물'을 집에서 부를 때 아들이 옆에서 휴대전화로 찍었다. 원곡이 깨끗한 멜로디 위주의 R&B라면 난 어린 시절 레이 찰스나 스티비 원더 등의 솔(Soul)을 좋아해 나만의 스타일로 불렀다. 좀 어설프게 들리더라도. 하하. 그러자 윤종신의 '좋니'를 불러달라는 요청도 오더라.(그는 차에서 혼자 운전하며 '좋니'를 불러봤다면서 쑥스러워하며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 이렇게 소통하면서 한창 활동하던 때와 달라진 환경에 느낀 점도 있을텐데.
▲ 우리 때는 늘 방송할 생각만 했다. 하지만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도 설 수 있는 방송이 몇 개 없다. KBS '열린음악회'와 '콘서트 7080' 정도인데 그마저 파업 때문에 녹화를 못 한다. 우리 또래 가수들이 대중과 소통할 공간이 없어 방황하는데, 유튜브나 SNS를 경험하며 내가 마음껏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 사실 한동안 가수 활동이 왕성하진 않았는데.
▲ 40대까지 많이 교만했다. 내 능력과 음악의 깊이를 세상이 날 못 알아봐 준다고 생각하며 서운해했다. 그래서 그사이 사업도 여러 번 했는데 잘 안됐고, 40대까지 남의 노래를 부르는 것도 부끄러워했다. 그 자체가 교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 50대 중반이다. 돌이켜보니 '내가 건방지게 살았구나, 후배들 보고는 목숨 걸고 음악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난 정말 대충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시장은 늘 살아있었고 내가 사람들이 주목할 좋은 곡을 발표하지 못한 것이다. 가수는 노래 부르는 것이 일이니 무대가 없다고, 나이 먹어 안 써준다고 원망하지 말고 나 자신이 변화된 세상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고 듣는 사람도 좋아하는 노래를 많이 부르고 싶다.
-- 록밴드 '우리'의 보컬 출신으로 이광조의 '사랑을 잃어버린 나'(1985)를 작곡하며 데뷔했다.
▲ 1984년 제대하고서 밴드 '우리'가 신촌블루스의 엄인호 형과 같이 연습을 했다. 이장희 형이 만든 광화문의 스튜디오였는데, 그때 이문세 씨가 엄인호 형에게 곡들 달라고 했는데 형이 마땅한 게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나랑 '우리' 밴드의 건반으로 같이 연습한 이영훈 씨가 이문세 씨에게 곡을 줬는데 이영훈 씨 곡이 낙점돼 프로듀서로 갔다. 1주일 뒤 이광조 형이 곡을 구한다고 해 엄인호 형이 우리에게 또 곡을 들려주라 했는데 그때 내 곡을 주게 됐다.
-- 1987년 솔로 가수로 나서 올해로 30주년이다.
▲ 그렇게 됐는지 몰랐다. 하지만 숫자는 별 의미가 없다. 당시 밴드를 유지하려면 밤에 행사 무대밖에 없었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아 흩어지게 됐다. 그때 우리가 완벽하진 않아도 프로그레시브 록 스타일의 음악을 하려 했다. 솔로 데뷔를 한 뒤 1989년 강인원, 김현식 씨와 부른 영화 OST 곡 '비 오는 날의 수채화'가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것 같다.
-- 한때는 기획사를 하면서 박효신과 화요비의 앨범 제작에도 참여했는데.
▲ 당시 박효신과 화요비를 발탁한 신촌뮤직의 자회사로 신촌인터내셔널을 만들어 내가 대표였다. 그때 이들의 앨범에 투자했는데, 1999년부터 2001년까지 2년 정도 했다. 그때 후배들의 앨범을 다시 들어보면 참 좋은 노래가 많더라. 우리 땐 '라'까지 올라가면 '하이'였는데 요즘 후배들은 '시, 도'까지 편하게 올라갈 정도로 가창력이 대단하다.
-- 목 관리는 어떻게 하나.
▲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열심히 한다. 요즘은 추워서 헬스장에 가 근육 운동을 한다. 나이 먹으면 근력이 떨어져서다. 노래 연습은 혼자서 차를 타고 다니며 한다. 차에서 부를 때는 성량을 온전히 낸다. 집에서 부르면 집사람이 '감성을 더 넣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한다. 하하.
-- 신곡이나 공연 계획은.
▲ 2014년에 '못난 이 사랑'이란 신곡을 냈는데 녹록지 않았다. 얼마 전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행사에서 만난 후배 작곡가 윤일상에게 내년 봄에 낼 곡을 달라고 부탁도 했다. 준비를 차근차근히 해볼 생각이다. 공연은 지난해 '포효'란 타이틀로 열었는데 내년 '포효 2'를 계획 중이다. 기회가 되면 '만약에'나 '좋니' 같은 후배들의 곡을 음원으로도 내보고 싶다.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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