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으로 차트 역주행 1위…문문 "제 음악은 일기장이죠"

입력 2017-12-27 08:00   수정 2017-12-27 08:28

'비행운'으로 차트 역주행 1위…문문 "제 음악은 일기장이죠"

유년의 결핍·청년의 고독이 전하는 위로…새앨범 '긴 시'도 발표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올해 음악 팬들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 노래가 있다.
인디 싱어송라이터 문문(본명 김영신·29)의 '비행운'이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이 곡은 올 2~3월께부터 입소문을 타고 각종 차트 100위권에 진입해 순위가 '역주행' 하더니 26일 지니, 올레뮤직 등의 실시간차트 1위를 찍었다.
'지구엔 좋은 노래가 참 많아서/ 비집고 들어갈 틈도 하나 없죠'('문, 문')라던 그의 서러움을 헤아려준 노래가 나온 셈이다.
지난해 7월 데뷔해 아직 대중적으로는 낯선 문문의 음악은 묘한 공감의 힘이 있다. 예쁜 시처럼 보이지만 자전적인 기록이 읽히고, 간결한 어쿠스틱 사운드와 포근한 음색에는 청춘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포개어져 있다.
그는 사람을 피해 도망 다니는 바퀴벌레에 자신을 빗대고('로치'), 집에 홀로 있던 유년의 모습을 고양이로 의인화하고('앙고라'), '엄마는 남이었지 불러본 적도 없이'('물감')라고 가감 없이 고백하며 위로라는 반작용을 끌어낸다.
최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만난 문문은 "제 앨범은 일기장"이라며 "일기에 음만 붙인 것으로 사람들이 제 일기장을 훔쳐본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사랑 노래를 하는 뮤지션들은 많지만, 이 얘기는 저만이 할 수 있으니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속을 꺼내 보인 음악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그는 결코 들떠 보이지 않았다.
"얻는 것도 있겠지만 잃는 것 또한 상응할 테니 기분이 막 좋다기보다 불안함이 있죠. 지금에 머무르고 싶을 뿐이에요."

예명이 '문문'인 것도 "제 음악에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지구 상에 좋은 노래가 너무 많으니 저는 달에서 노래하겠다는 의미"라며 "음악에 자신감이 없으니 경쟁을 피하겠다는 투정이 섞였다. 유치하지만 달을 보면서 위로를 받곤 했다"고 설명했다.
서정적인 멜로디에 얹힌 노랫말의 무거운 정서에는 유년의 결핍과 청년의 고독이 깔렸다. 그의 목에 새겨진 파란색, 빨간색, 초록색으로 된 세 줄의 타투가 눈에 들어왔다. '내 목에 줄 세 개/ 내가 살아온/ 그때에 느낀 색깔'('물감')이란 가사 그대로였다.
"저의 30년 인생을 세 가지 색깔로 구분했어요. 어린 시절의 우울감을 파란색, 20대의 느낌과 열정을 빨간색, 30대 이후 굴곡 없이 살고 싶은 바람을 초록색으로 표현했죠. 음악을 포기해야 할지 고민할 때 저를 다잡고자 한 타투예요."
충북 괴산에서 태어난 문문은 3살 때 부모님이 이혼한 뒤 아버지와 살며 전학을 많이 다녔다. 어머니를 본 것은 6~7살 때가 처음으로 그때 이후 몇 번 만났지만 지금은 연락하지 않고 지낸다.
집안에 손을 벌리기 싫어 고교 졸업 후 독립한 그는 직업군인의 길을 택했다. 강원도 인제에서 부사관 생활을 5년간 했지만 음악을 향한 꿈이 꿈틀대 2012년 12월 전역을 하고서 이듬해 여주대학교 실용음악과에 진학해 작곡을 배웠다. 2014년 나이 어린 학교 동기, 후배들과 밴드 '저수지의 딸들'을 결성했지만 1년여 활동 끝에 팀이 와해됐고 학교도 자퇴했다.
그는 "중학교 때는 SM·YG·JYP 등 대형 기획사 오디션을 보러 다닐 정도로 스타가 되고 싶었고, 한때는 뜨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지만 밴드가 해체된 뒤 자괴감을 느꼈다"며 "모든 욕심을 버리게 됐고, 이때부터 음악에 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앨범 제작비는 한 중식 레스토랑에서 일해 번 돈과 대출로 충당했다. 처음에는 대중의 피드백이 없으니 경제적으로 악순환이었지만 지난 8월 비로소 대출을 갚았다고 한다. 그가 이 레스토랑에 손님으로 온 아이유에게 '제 노래 중 '비행운'이라는 노래가 있으니 들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적은 티슈를 건넨 일화는 유명하다. 방탄소년단의 정국이 "요즘에 꽂힌 노래"라고 소개해 더욱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노래 가사 중 '나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란 대목이 김애란의 소설 '비행운'(2012)에 있는 구절 '너는 자라 겨우 내가 되겠지'를 옮겨놨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일었다.

그는 "노래의 모티프는 비행운을 봤다는 친구에게서 얻었다"며 "비행기가 지나가면서 온도 차로 생기는 긴 구름이어서 나의 뜨거운 꿈과 현실의 차가움을 비유해서 썼다. 가사가 90% 완성됐을 때 한 줄을 고민하다가 소설을 읽게 됐고 그 구절이 마음에 들어 '나는'으로 바꿔 담았다. 이후 출판사에 연락해 상황 설명을 하고 앨범 소개에 '소설 비행운의 일부를 인용했다'고 넣었다. 처음부터 말씀 못 드린 것은 죄송하지만 김애란 선생님도 응원한다고 전해주셨다"고 말했다.
힘든 시간이었기에 작업에 매달렸고, 그는 지난 19일 새 앨범 '긴 시'를 발표했다. 앨범 소개에서 그는 긴 시처럼 '한 번에 다 듣기에는 지루할 수 있으니 오래 두고 아껴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향긋한 유행가이기보다는 지루한 연가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느릿한 선율에 쓸쓸한 하모니카 연주를 덧댄 타이틀곡 '물고기'에는 역시 문문의 그림자가 강하게 드리워져 있다.
그는 "물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 물고기에 나를 빗댔다"며 "물고기가 물 밖이 궁금해서 고개를 들어봤더니 건져 올려져 어느 순간 도마 위에 올라갔고, 원한 건 이게 아니니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내용으로 쓸쓸한 곡"이라고 소개했다.
문문 음악만의 힘을 묻자 동질감을 꼽았다.
"어느 순간 사람들이 이질감을 느끼며 정 때문에 들어준다는 생각이 들면 그만해야겠죠. 어린 시절의 고독함이 제 음악의 기반이 됐지만 나중에 배가 부르면서도 가난한 노래를 하면 지루해질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에세이로도 쓰고 있다.
또 내년에는 반려견 시와, 우주와 함께 캠핑카를 타고 다니면서 1인을 위한 오지 버스킹을 하고 싶다고 했다. 올해 20번의 공연을 열고, 각종 페스티벌에 초대된 그는 "음원으로 저를 아는 분들은 선입견이 있는 듯하다. 제가 그리 진중하고 조용한 사람은 아니다"며 "공연에서 느끼는 리얼한 피드백이 좋다"고 말했다.
mim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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