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동남아 한류의 중심인 태국에서 한국어 조기교육을 받은 고교생이 각고의 노력 끝에 우리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선발돼 화제다.
이 학생은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탓에 한국어를 가르쳐준 한국 국제학교를 중도에 포기해야 했지만, 한국에서 공학도가 되는 꿈을 끝내 이뤘다.
주인공은 태국 방콕의 나와민타라치누팃 싸뜨리윗타야2 학교에 재학 중인 떼칫 껫분르(19)다.
'떼떼'라는 별명이 더 친숙한 그는 2018년 한국 정부 초청 외국인 학부장학생으로 선발돼 내년 부산대학교 나노에너지공학과에서 공학도의 길에 들어선다.
태국에서는 그동안 주로 과학고 등 명문고 출신의 영어 우수자가 외국인 학부 장학생 선발 제도의 혜택을 받았다. 일반고 출신이 장학생으로 뽑힌 것은 떼떼가 처음이다.
또 그는 태국에서 선발된 역대 정부초청 학부 장학생 중 유일한 한국어 능력시험(TOPIK) 최고 등급(6급) 보유자다. 전 세계적으로도 토픽 6급을 딴 학부 장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방콕의 한국 국제학교에서 마친 떼떼의 한국어 실력은 '원어민'에 가깝다.
수학과 과학 과목에 강점을 보이면서 일본의 과학 분야 아시아 학생 교환 프로그램인 '사쿠라 익스체인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동남아시아 '한류의 중심'인 태국 젊은이들은 한국 아이돌과 한국 드라마에 열광한다. 올해 만 19세인 떼떼도 한류 팬이지만 취향은 또래의 청소년들과 완전히 달랐다.
좋아하는 한국 가수를 묻자 떼떼는 요즘 대세인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가 아니라 김건모, 이승철, 임창정, DJ DOC 등을 거명했다. 요즘 K-팝 가사는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1990년대 한국 가요의 노래 가사는 오히려 듣기 좋다는 '아재' 스타일의 설명도 곁들였다.
한국에서 가보고 싶은 곳을 묻자 환경과 에너지 분야에 관심을 큰 예비 공학도답게 논란의 개발 현장인 4대강을 첫손에 꼽았고, 분단의 최전선인 판문점에도 가보고 싶다고 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고대국가 명칭은 물론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조선 왕조를 거론할 만큼 한국 역사에 대한 관심도 컸다. 한국 국제학교에서 배운 한국사 덕분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태국에 돌아와 대체 에너지 분야에 취업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는 떼떼는 "표현은 안 했지만, 장학생으로 선발돼 한국대학에 가게 돼 너무 기뻤다. 한국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또 "한국국제학교에 다닐 때 사귄 한국 친구들과 2025년 12월 10일 63빌딩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며 "그 친구들을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흥분된다"고 덧붙였다.
떼떼는 자신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과 장학생 선발을 '한국어에 꽂힌' 어머니 나파펜 껫분르(48)씨의 선견지명 덕으로 돌렸다.
대학생 시절 친구의 권유로 잠시 한국어를 배운 적이 있는 나파펜씨는 떼떼를 여섯 살 때부터 한국인이 운영하는 선교원에 보냈고, 엄청난 수업료 부담에도 불구하고 방콕 한국국제학교에 입학시켰다.
아들의 한국어 수학을 위해 학교 근처로 거처까지 옮기면서 '교육 노마드족'(자녀 교육을 생활터전을 옮기는 부모)의 길도 마다치 않았다. 떼떼의 동생 셋도 모두 한국국제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학비 부담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컸다. 네트워크 마케터와 택시 기사로 일하는 부부는 부동산까지 처분해 학비를 댔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큰아들인 떼떼와 둘째를 중학교 과정 이후 상대적으로 학비가 싼 현지 학교로 전학시켜야 했다.
나파펜씨는 "한국어를 배우면 사회에 진출할 때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되고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에 어렵지만, 아이들을 모두 한국 국제학교에 보냈다"며 "첫째가 장학생으로 한국에 발을 디딘 만큼 나머지 아이들도 같은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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