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중단 통일부 반대에도 靑 "박근혜 지시로 변경불가"

입력 2017-12-28 11:00  

개성공단 중단 통일부 반대에도 靑 "박근혜 지시로 변경불가"
부처간 협의없이 박 전 대통령 일방지시로 결정…"통치행위도 적법해야"
靑주도로 '임금 전용'이 중단 근거로 삽입…통일부 혁신위 대북정책 검토결과 발표



(서울=연합뉴스) 이정진 기자 =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혁신위)가 28일 밝힌 지난해 2월 개성공단 전면중단 결정 과정은 중대한 외교·안보 사안마저도 소통 없이 일방적인 지시에 따라 결정된 박근혜 정부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남북관계에 큰 파문을 가져올 사안이지만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일방적인 구두 지시로 결정됐을 뿐 부처 간 토론이나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았다.
주무부처인 통일부가 '갑작스러운 운영 중단은 피해가 크다'며 '철수 시기를 잘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대통령의 지시를 변경할 수 없다'는 청와대에 막혔다.
특히 개성공단 전면중단의 근거로 제시됐던 '개성공단 임금의 핵개발 전용'은 박근혜 청와대 주도로 발표 자료에 삽입된 것으로 파악됐다.
민간전문가 9명으로 구성된 혁신위는 개성공단 전면중단 외에 남북회담, 민간 교류협력, 정보사항 발표, 통일교육 등을 혁신과제로 선정해 정책 결정 과정에 문제점은 없었는지 검토했고 이날 그 결과를 담은 '정책혁신 의견서'를 발표했다.




◇ 통일부 '갑작스러운 개성공단 중단은 피해 커' 의견, 靑에 막혀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2월 10일 개성공단 전면중단 결정 당시 이 결정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통해 이뤄졌다고 밝혔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혁신위는 "2월 8일 개성공단에서 철수하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구두 지시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2월 10일 NSC 상임위원회는 사후적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혁신위는 또 헌법에 따르면 중요한 대외정책은 국무회의의 필요적 심의사항인데 중단 결정과정에서 국무회의 심의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 해야 하는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는 구두로만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통일부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가 전달된 뒤 '철수 시기를 잘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혁신위는 "통일부는 갑작스럽게 개성공단 운영을 중단하면 피해가 적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면서 "그러나 국가안보실장과 외교안보수석은 대통령의 지시를 변경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통일부도 즉각적 철수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혁신위는 그러나 통일부의 책임도 있다고 지적했다.
개성공단 주관부처로서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과 규정에 따라 조치를 취할 것을 건의해야 했지만, 대통령 지시에 따라 법률에 근거하지 않은 개성공단 중단 조치를 실행했다고 혁신위는 설명했다.
혁신위는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는 행정행위가 아닌 이른바 통치행위 방식으로 이뤄졌다"면서 "남북관계도 법치의 예외가 될 수 없고, 법을 뛰어넘는 통치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혁신위는 대북사업의 안정성과 신뢰성 확보를 위해 남북관계 악화로 손해를 입은 경협 사업자에 대한 손실보상 법률을 마련하고 경협 및 교역 보험제도를 개선할 것을 주문했다.



◇ 박근혜 청와대가 '개성공단 임금전용'을 중단 근거로 삽입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 전면중단을 발표하면서 그 근거로 개성공단 임금의 WMD(대량살상무기) 전용을 내세운 것도 청와대 주도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정부 성명에서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총 6천160억 원의 현금이 유입됐다"면서 "그것이 결국 국제사회가 원하는 평화의 길이 아니라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고도화하는 데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통일부는 지난해 1월 4차 핵실험 이후에도 '개성공단 임금의 핵개발 전용 연관성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고, 통일부가 2월 9일 최초 작성한 성명 초안에도 임금 전용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2월 9일 오후 청와대가 자금 전용 표현이 들어가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2월 10일 NSC 상임위원회 회의 이후 정부 성명문을 대통령에게 서면 보고하는 과정에서 최종 포함됐다고 혁신위는 밝혔다.
당시 참고한 것으로 보이는 정보기관 문건은 주로 탈북민의 진술 및 정황에 기초한 것으로 객관성이 확인되지 않은 것이었으며, 해당 문건에도 '직접적인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표기돼 있다고 혁신위는 설명했다.
홍용표 장관은 당시 한 방송에 출연해 "개성공단으로 유입된 돈의 70%가 당 서기실에 상납됐다"고 말했다가, 국회에서는 '증거자료를 갖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을 바꾸는 등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 "북한 정보사항 정치적 이용 금지해야"
혁신위는 개성공단 전면중단 뿐아니라 북한의 천안함 피격에 따른 대응인 2010년 '5·24조치'도 통치행위의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통일정책은 정치적 당파성에 휘둘리지 않고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법률에 근거해 일관성 있게 이뤄져야 한다"면서 통일정책의 법제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를 위해 통일부 안에 법무담당관실을 설치하고 통일정책 법제화 TF(태스크포스) 및 범부처 실무위원회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혁신위는 건의했다.
혁신위는 또 지난해 4월 중국 내 북한식당에서 일하던 여종업원의 집단 탈북, 태영호 전 북한 공사의 망명 등을 통일부가 공개적으로 발표한 데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혁신위는 특히 "종업원 집단 탈북은 총선을 불과 4일 앞둔 민감한 시기에 발표했다"면서 "북한 정보사항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혁신위는 남북회담과 관련, "우리측 국가안보실과 북측 국방위원회 간에 회담이 진행되면서 남북회담 운영체계가 약화됐다"면서 "주관부처인 통일부가 유관기관과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남북회담을 추진하는 체계를 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밖에 혁신위는 민간 교류협력이 전면 통제되면서 교류협력 기반이 약화됐다면서 교류협력법제와 북한 주민 접촉 신고제도의 개선 노력도 주문했다.
또한 '북한 실상 바로 알리기' 명목으로 안보교육이 확대됐다면서 "앞으로는 평화와 공동번영의 길을 모색하는 통일교육으로 방향을 정립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transil@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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