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경찰, 이슬람율법 위반 체포하지 않고 계도 위주
사우디 법원, 얼굴 가리지 않아도 법원 입장 가능
(서울·테헤란=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강훈상 특파원 = 일상 생활에까지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시행하는 중동의 대표적인 나라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여성 복장을 온건하게 대하는 정책 변화가 감지된다.
두 나라는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맹주인 데다 정치·외교적으로 대립하지만 날카로운 체제 대결 속에서도 '적대적 공진'하는 관계이기도 하다.
호세인 라히미 이란 경찰청장은 27일(현지시간) 이슬람 율법을 어긴 시민을 지금처럼 체포하는 대신 계도하겠다고 밝혔다.
라히미 청장은 "사회지향적, 교육적 접근법에 기반을 두고 경찰은 이슬람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 이들을 체포하지 않을 것"이라며 "경찰은 대신 이들을 교육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란 경찰이 율법을 위반한 8천여명을 대상으로 이미 121차례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했다고 밝혔으나 위반 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그는 '이슬람 율법'이 어떤 내용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른바 여성의 '불량 히잡'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여성이 외출할 때 무조건 히잡을 머리에 써야 한다. 그러나 이란 여성들은 머리 전체를 가리지 않고 뒷부분에 걸치는 루싸리라고 불리는 스카프를 대부분 착용한다.
루싸리는 히잡과 달리 검은색이 아니고 느슨한 편이다.
이란 경찰은 특히 여성들이 운전할 때 루싸리를 쓰는 둥 마는 둥 하거나 어깨에 걸치는 '불량 히잡'을 단속해 과태료를 매기거나 상습적일 경우 수일간 구류 처분하기도 한다.
2013년 이전 보수 정권 때는 이슬람적이지 않은 여성의 복장만을 단속하는 사복 경찰이 곳곳에 잠복해 현행범으로 체포하기도 했다.
이란 당국의 이러한 결정은 최근 수니파 종주국이자 이란의 라이벌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개방된 온건 이슬람 사회를 목표로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가운데 나와 주목된다.
사우디는 모하마드 빈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개혁조치 '비전 2030' 계획에 따라 내년 6월부터 여성의 자동차, 오토바이 운전을 허용하고, 내년 3월부터는 1980년대 초 금지했던 상업 영화관도 약 35년 만에 영업허가를 내주기로 했다.
이란이 이슬람 율법에 따른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최근 국제사회에서 여러 외교 문제에 휘말린 이란 정부가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기 위한 계산을 깔린 것으로 분석됐다.
최근 몇 년간 이란 젊은이들 사이에서 여성이 외출 시 머리에 착용하는 히잡을 비롯해 의상이나 외모에 관한 각종 규율을 완화해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란 전체 인구 8천200만명의 40%가 25세 미만인데 중도·개혁 성향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지난 2013년에 이어 지난 5월 재선되는 데에는 이들의 지지가 큰 역할을 했다.
이런 상황은 사우디 역시 마찬가지다. 사우디 2천만(외국인 제외) 인구 중 절반이 25세 미만이고, 인터넷의 발달로 예전의 종교적 엄숙주의로는 통치가 어려운 상황이 도래했다.
이들의 욕구를 구시대적으로 억누르는 대신 숨통을 틔워주는 편이 사우디 왕정의 안정에도 이득이 될 수 있다.
국제위기그룹(ICG)의 이란 프로젝트 담당자 알리 바에즈는 이란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대이란 제재를 강화하고 핵합의를 파기하는 등 이란이 국제사회에서 직면한 정치적 위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바에즈는 "로하니 정부는 트럼프 정부의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사회 내부의 불만이 적을수록 이란이 국내에서 직면하게 될 안보 위기도 완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우디 법원도 때마침 28일 여성이 법원의 권위를 존중하는 정숙한 옷을 입었다면 얼굴을 가리지 않아도 법원에 입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우디 법원은 지난해 "여성이 얼굴을 베일로 가리지 않고 적절한 복장을 하지 않으면 법원 청사에 들어올 수 없다"고 규제한 공문을 이날 철회했다.
사우디가 여성의 복식과 운전을 엄격히 규제하고, 대중 예술을 금지한 것도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이란이 신정일치의 이슬람 국가로 급변한 영향이 다분하다.
이란 이슬람혁명 직후 이에 자극받은 사우디의 강경한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인 이크완이 사우디 왕정의 세속화에 반기를 들고 메카 대사원을 2주간 점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 사우디 왕정은 이란 못지 않은 이슬람 율법 통치를 강화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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