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무거움'이 아닌 '가벼움'이 지배하는 시대

입력 2017-12-28 15:10  

지금은 '무거움'이 아닌 '가벼움'이 지배하는 시대
프랑스 철학자 질 리포베츠키 신간 '가벼움의 시대'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무겁다'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진지하고 뭔가 존중할 만한 것이란 느낌을 준다. 반면 '가볍다'는 종종 경박하거나 가치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프랑스의 소장파 철학자 질 리포베츠키는 오늘날을 '가벼움의 시대'로 규정하며 이제 무거운 것의 논리보다는 가벼운 것의 논리가 더욱 가치 있게 여겨지는 때가 됐다고 말한다.
리포베츠키는 신간 '가벼움의 시대'(문예출판사 펴냄)에서 가벼움이 지배하는 사회의 모습을 구석구석 들여다본다.
사람들은 소비할 때 더는 사용가치로만 판단하지 않는다. 비실용적이더라도 미적이고 기발한 상품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혁신적이고 재미있는 제품이 눈길을 끈다.
그동안 석탄과 철강, 기계, 화학 산업 등 '무거운' 산업이 경제발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소비재와 서비스 산업 등 '가벼운' 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다.
영화와 TV 시리즈물, 방송 프로그램은 무겁고 진지한 내용보다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데 더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 뉴스도 마찬가지다. 비극에서 오락까지 이질적인 뉴스들이 빠르게 전해졌다 사라진다.
물건들은 점차 경량화, 소량화하고 있으며 디지털 혁명은 '가벼운' 기술의 발달을 가져오고 있다.
가벼움의 시대는 사물뿐 아니라 우리의 몸도 지배하고 있다. 덜 기름지고 가벼운 요리를 먹고 다이어트와 피트니스로 가벼운 몸을 추구한다. 스포츠 역시 전통적으로 수치화된 기록과 경쟁에 초점을 맞췄던 것에서 이제는 강렬한 자극과 아찔한 흥분을 주는 스포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서도 이른바 '쿨(cool)의 문화'가 여러 분야에서 자리잡고 있다.
저자는 가벼움을 일방적으로 찬양하거나 비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벼움이 주는 혜택과 역효과를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가벼움의 시대'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가벼운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한편으로는 불안과 우울을 느끼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날씬함에 대한 강박은 여러 부작용을 낳고 있다. 디지털의 발달은 많은 혜택을 가져왔지만, 사람들은 이제 '디지털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모든 것이 예전보다 분명 유연해지고 자유로워졌지만, 궁극적인 삶의 즐거움이 커졌는가를 물으면 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저자는 이를 두고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는 가벼움에서는 많이 나아졌지만, 내적 가벼움에서는 거의 나아지지 못했다"면서 "우리는 가볍게 살기의 어려움을 그 어느 때보다 잘 느낀다"고 진단한다.
저자는 이어 '가벼움의 시대' 가장 큰 문제는 가벼움 그 자체가 아니라고 말한다.
"경박한 가벼움 그 자체는 위험하지 않다. 그것이 비대해져서 삶을 침범하여 성찰과 창조, 윤리적·정치적 책임감 등 삶의 다른 본질적인 차원들을 억누르는 것이 위험하다. 경박한 가벼움 그 자체는 비극적인 것이 아니다. 다만 지배적인 생활방식으로 자리 잡아 인간 생활을 '풍요'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파괴할 때는 비극이 된다." 이재형 옮김. 388쪽. 1만8천원.
zitro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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