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호프키즈' 창단 10년 맞는 박정숙 씨

입력 2017-12-29 07:30  

[인터뷰] '호프키즈' 창단 10년 맞는 박정숙 씨
"국내 다문화인 어떻게 대하느냐가 공공외교의 출발점"
"엄마나라 말 잘하려면 엄마 존경하고 대화 많이 해야"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방송 전문MC에서 드라마 '대장금'의 문정왕후 역을 거쳐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 재학시절 '한류 전도사'로 이름을 떨치던 박정숙(47) 씨가 다문화 활동가로 변신한 지 내년이면 10년을 맞는다.
그는 2008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호프키즈(HOPE KIDS)'란 이름으로 APEC 회원국 출신 다문화가정 아동 문화체험 캠프를 연 것을 계기로 다문화 아동을 위한 교육 프로젝트 '호프키즈'를 시작했다. 2012년 7월에는 사단법인 다문화교류네트워크를 발족시켜 이사 겸 호프키즈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율곡로의 한 식당에서 만난 박 단장은 예전에 아침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듯이 밝고 높은 어조로 내년 계획을 설명하다가 다문화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자 어두운 낯빛으로 당시 심정을 털어놓았다.
"2007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등 미국 여러 대학의 한류 관련 토론회를 기획하고 심포지엄의 기조연설을 맡으며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할 때였죠. 동남아 신부들이 한국으로 팔려간다는 내용의 뉴욕타임스 기사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류 드라마를 보고 호감을 느껴 한국인과 결혼했다가 극심한 차별과 고된 노동에 시달린다니 책임감도 느꼈죠. 제가 미국에서 명문대를 다니면서도 월세로 집을 얻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겪은 차별 경험도 다문화 운동에 뛰어들기로 결심하는 데 한몫했고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다문화 아동 교육이었다. 고등학생 멘토들을 집으로 보내 학과 공부를 가르쳐주고 가정 형편상 쉽게 접하지 못하는 클래식 음악이나 체육 등의 재능을 발굴했다. 어린이 축구교실을 운영하다가 전국의 다문화어린이축구단이 참가해 기량을 겨루고 프로 선수들의 강습도 받는 드림컵 대회를 4년째 열고 있다. 지난 2일 송년 행사로 마련한 이상봉 자선패션쇼에서는 다문화 패션모델 한현민이 어린이들에게 워킹과 포즈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가슴 아픈 기억이 참 많아요. 아빠는 없고 엄마는 일 나가느라 혼자서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집에 방치된 아이를 많이 봤어요. 어떤 아이 엄마는 이혼소송을 당했는데 한국말을 할 줄 몰라 통역을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치루를 심하게 앓는데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병원에 데리고 간 적도 있죠. 그 아이들이 이제는 학교에 잘 다니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으니 그게 보람이죠."
박 단장은 재단을 출범시키며 김중섭 경희대 교수를 이사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뒤로 물러앉았다. 김 교수가 연임한 뒤 2016년 10월부터는 여성가족부 차관을 지낸 이인식 지오그린 회장이 3대 이사장을 맡고 있다. 새누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재영 씨와 그해 5월 결혼해 재단이 정치적 시비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으나 여전히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2018년 호프키즈 출범 10주년을 맞아 다문화교류네트워크는 두 가지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나는 올해 시작한 '찾아가는 공부방 STEAM-HOPE'를 ICT(정보통신기술) 플랫폼 기반을 통해 확장하는 것이다. 'STEAM'은 과학(S)·기술(T)·공학(E)·예술(A)·수학(M)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이들 분야를 아우르는 융합교육을 일컫는다.
"호프키즈가 9년째 운영해온 '찾아가는 공부방'에 STEAM 교육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또 웹과 모바일 기반으로 콘텐츠를 공유하고 멘토-멘티 결연을 대폭 늘릴 생각입니다. 4차 산업혁명 추세에 필요한 교육이기도 하고, 아이들이 잘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탈북자를 포함한 중도입국 청소년들은 출발선이 달라 기존 교과목이나 교양 등에서는 어차피 비다문화 학생들을 따라가기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분야에서만큼은 똑같이 출발하도록 해줘야죠. 그러면 앞서가는 아이들이 얼마든지 나올 겁니다."
다른 하나는 뮤지컬단을 만들어 공연을 꾸미는 것이다. 악기가 필요 없이 춤과 노래로 할 수 있는 뮤지컬을 가르치면 아이들 정서 함양이나 재능 발굴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뮤지컬은 모여서 연습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것 역시 ICT 플랫폼으로 해결할 생각이다. 춤과 노래와 연기 등 전문가들의 강연 영상을 보내면 각자 집에서 연습했다가 2주마다 모여 점검받고 함께 맞춰보는 것이다.
일본 게이오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은 박 단장은 내년에 공공외교와 다문화를 주제로 논문을 쓸 계획이다. 다문화 활동 10년을 정리하는 책도 함께 준비하고 있다.
"외국의 유명 학자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려주는 것도 필요하고, 전 세계 빈곤국의 개발을 돕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들어온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이 얼마나 좋으면 잘 모르는 남자와 결혼까지 했겠어요. 결혼이주여성이나 이주노동자들은 늘 전화나 SNS로 고국의 가족·친구들과 소통하고 있죠. 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해주느냐에 따라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그 나라 사람들의 이미지가 좌우됩니다. 공공외교나 민간외교가 멀리 있는 게 아니죠. 당장 우리 주변에서부터 해야 하는 일입니다."
내년이면 다문화가족지원법이 제정된 지 10주년을 맞는데도 국민의 인식 수준은 아직 멀었다는 게 박 단장의 판단이다. 보통은 법률이 뒤에 따라오는데 다문화에 관해서는 인식이 제도를 못 쫓아오고 있다는 것이다.
박 단장은 "다문화에 관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하니 다문화인을 구분해 인식하며 불우이웃돕기처럼 생각한다"면서 "그들과 우리를 구분 짓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박 단장은 지난해 9월부터 EBS FM(104.5㎒) '다문화 음악여행'(일요일 밤 11시)을 진행하고 있다. 다문화인들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추천하는 모국의 음악을 함께 듣는 프로그램이어서 재미와 보람을 함께 느낀다고 한다.
2009년부터 세계백신연합(GAVI) 한국대표도 맡아왔고 2008년부터 경희대에서 국제정치를 강의하고 있다. 청소년활동진흥원과 한국유방건강재단(핑크리본) 이사 직함도 갖고 있다. 5살 난 아들을 키우느라 더 바빠졌지만 아들이 호프키즈 행사에 따라나서는 것을 좋아해 다행스럽다고 한다.
"다문화 아이들은 두 나라에서 사업가도 외교관도 될 수 있죠. 이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있어요. '엄마나라 말을 잘해야 양국의 가교 구실을 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엄마와 대화를 많이 나눠야 한다'는 겁니다. 그 아이가 훌륭하게 자라 아빠나라나 엄마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 상상만 해도 멋지지 않나요?"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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