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곳곳서 8년 만에 정치 시위…민생고·반기득권 '복합적'

입력 2017-12-31 07:00   수정 2017-12-31 16:55

이란 곳곳서 8년 만에 정치 시위…민생고·반기득권 '복합적'

반정부 보수층, 경제난 서민층, 통제 불만 젊은층 섞여
로하니 대통령 재선 반년 만에 '위기'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 수도 테헤란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30일(현지시간)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규탄하는 정치적 시위와 소요가 벌어졌다.
집회와 시위를 엄격히 통제하는 이란에서 '관제 집회' 외에 시민의 집단 행동이 벌어진 것은 이례적이다.
언제까지 지속할 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란에서 수천명 규모의 시위대가 모인 것은 2009년 이후 8년 만이다. 2009년엔 테헤란 위주였지만 이번엔 전국적이라는 점이 다르다.
당시 강경 보수파였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자 개혁파 대학생 층을 중심으로 부정선거라고 거세게 반발하면서 테헤란에서 대규모 시위가 8개월간 이어졌다.
정부는 이를 강경하게 진압했다.
이번 시위는 28일 이란 제2도시 마슈하드에서 시작됐다. 수만명 규모로 추산된 시위대는 현정부가 물가 폭등과 실업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강력히 규탄했다.
이를 두고 보수적 종교 도시인 마슈하드가 중도·개혁 성향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을 압박하기 위해 조직한 시위였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하지만 29일 이 시위가 테헤란, 이스파한, 케르만샤, 아흐바즈, 하메단 등 전국 곳곳으로 퍼져나가면서 '반정부 시위'로 규정하기엔 어려울 정도로 복잡해졌다.
이들은 민생고뿐 아니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에 대한 불만도 터뜨렸고, 이란 군부의 시리아, 레바논 개입도 비판했다. 또 부와 권력을 독점한 기득권층에 강한 적대감을 표출하는 구호도 등장했다.
소셜네트워크(SNS)에서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사진이 인쇄된 현수막을 끌어내리는 동영상이 유포됐다.
30일엔 이란 최고 명문대 테헤란 대학교에서 학생 수십명이 모여 통제 중심의 통치 방식을 표적으로 삼았다. 경찰은 교문을 닫아 가두시위를 벌이려던 대학생들을 막았고, 최루탄을 쏘며 시위대를 해산했다.
일부 여성들은 히잡 의무 착용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이란 내무부는 "시민들은 사회 불안을 조장하는 불법 시위에 가담해서는 안된다"고 발표했다.
로하니 대통령을 반대하는 보수층, 민생고에 시달린 서민층, 실업이 시달리는 젊은층, 더 많은 자유를 원하는 급진 개혁파 대학생층이 시위대에 섞였다.
반정부 보수파로서는 시위가 확산하면 개혁적인 주장이 전면에 부각되는 점이, 개혁파로서는 민생고 해결을 요구할수록 자신들이 지지하는 로하니 정권의 부담이 커지는 미묘한 상황이다.
이란 내부의 복잡다단한 사회·정치 계층과 구조를 방증한다고도 볼 수 있다.
미국, 영국 등 서방 언론은 최고지도자가 이끄는 신정일치 체제에 대한 내부 불만에 대체로 방점을 두고 보도하고 있다.
이란 정부의 대응은 이번에도 강경하다. 이란 중부 로제스탄주에서 30일 시위대 1명이 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인터넷을 통해 퍼졌다.


시위의 성격은 다층적이지만 로하니 대통령으로서는 5월 재선에 성공한 지 반년여 만에 안팎으로 위기에 처하게 됐다.
자신의 최대 업적인 핵합의의 한 축인 미국이 1월 정권 교체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를 파기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란 보수파는 로하니 대통령이 핵합의를 이뤄냈을 때 "미국에 속아 넘어갔다"고 비판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결과적으로 보수파의 주장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로하니 대통령의 입지가 좁아진 게 사실이다.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를 규탄하는 시위가 보수파가 조직한 시위라고 하더라도, 이란의 서민 경제 회복이 매우 더딘 것도 사실인 터라 로하니 대통령의 책임으로 귀결될 수 있다.
핵협상을 추진한 명분이 경제 회생인 만큼 로하니 대통령은 서민층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놓아야 한다.
이번 시위가 로하니 대통령만이 아닌 이란 최고의 권력자인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에게까지 향하게 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초미의 관심사다.
30일 테헤란에서는 2009년 반정부 시위를 진압해 안정을 되찾은 것을 기념하는 보수파의 집회가 대규모로 열렸다.
단순 도식으로는 이날 집회가 최근 계속된 반정부 시위의 맞불 성격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수파가 대부분 모인 이 집회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지지하는 내용이었고, 로하니 대통령과는 거리를 뒀다.
정치적 성향으로는 보수파와 중도·개혁파가 로하니 대통령을 기준으로 갈리지만, 경제난은 양측의 공통분모다.
다만 경제난의 원인을 보수파는 로하니 정부의 실정과 미국으로, 중도·개혁파는 보수 기득권의 독점과 통제적 통치 방식으로 보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최근 이례적인 전국 단위의 정치 시위를 두고 시위대의 구성과 요구가 다양해 규모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과 구심점이 없어 며칠 뒤 사그라질 것이라는 예측이 교차하고 있다.

<YNAPHOTO path='AKR20171231002700111_03_i.jpg' id='AKR20171231002700111_0301' title='하산 로하니 이란대통령[EPA=연합뉴스자료사진]' caption=''/>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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