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시민 29명이 숨진 충북 제천 화재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서울 시내 목욕탕과 찜질방 등 다중이용시설 중에도 화재에 무방비 상태인 곳이 수두룩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지난해 12월 22일부터 28일까지 시내 목욕탕과 찜질방 등 319곳에 대해 불시 소방특별조사를 한 결과, 약 38%인 120곳에서 330건의 법규 위반사항이 적발됐다. 특히 목욕탕이나 찜질방에서 비상구로 나가는 피난통로에 장애물을 방치하거나 합판을 설치해 화재 시 대피가 어려운 경우가 38건에 달했다. 그 밖에 방화문에 이중 덧문이나 유리문을 설치해 방화문을 열고 나갈 수 없게 한 경우가 7건, 한증막이나 탈의실에 대피 유도등을 설치하지 않거나 철거 상태로 방치한 경우가 8건이었다. 제천 화재 이후 경기도 북부 소방재난본부도 관내 복합건축물 내 요양시설·찜질방·목욕탕·영화관 등 375곳을 점검해, 비상구를 제대로 갖추지 않거나 방화문이 정상 작동하지 않은 11곳에 과태료를 부과했다.
제천 화재 당시 2층 여성 사우나에서만 20명의 인명피해가 났는데 비상계단 통로가 철제선반으로 막혀 있었다. 이번 소방점검 결과는 서울 등 다른 지역의 다중이용시설도 제천 화재 같은 참사가 발생할 위험을 안고 있음을 보여줬다. 서울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목욕탕이나 찜질방은 탕비실·탈의실·휴게실·수면실 등 여러 용도로 나뉘어 있어 내부 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화재로 연기가 차면 내부 구조에 익숙한 사람도 대피통로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비상구 문은 대피하는 방향으로 밀어 열 수 있어야 하는데 방화문에 추가로 설치한 덧문은 당겨서 여는 구조여서 화재 시 매우 위험하다는 문제점도 드러났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이번에 법규를 위반한 46곳에 과태료를 부과하고, 74곳에 시설물 원상복구 명령을 내렸으며, 관계기관에도 통보했다. 하지만 이런 일회성 점검과 과태료 부과 정도의 행정처분으로는 대형 화재를 막기 어렵다. 소방점검 대상과 횟수를 대폭 늘리고, 행정처분 외에 형사 고발 등 더 강력한 조치를 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2일 청와대 신년인사회에서 새해 소망으로 한반도 평화와 국민안전을 꼽았다. 문 대통령은 "안전한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국민이 갖게 된 집단적 원년이지만 지난 한 해 우리는 아직도 많이 멀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나라와 정부가 국민의 울타리와 우산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최재형 신임 감사원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안전에 관한 감사원 감사를 강화해주면 정부도 더 엄격하게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의 약속처럼 무술년 새해가 '국민안전의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범정부 차원에서 대형 재난·사고 예방 계획을 마련해 강력히 실행에 옮겨야 한다. 소방방재청은 제천 참사 이후 전국 시·도에 '필로티 구조의 목욕탕과 찜질방 등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소방점검을 지시했고, 지난달 26∼29일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점검이 실시됐다. 정부는 점검 결과가 취합되는 대로 심각한 부분부터 당장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관련 법제가 정비될 때를 기다리지 말고 일단 급한 불부터 끄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권도 화재진화를 방해하는 불법주차 대책 등 소방안전 법률 개정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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