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반정부 시위에 대외 패권 전략 바뀔까

입력 2018-01-03 10:08   수정 2018-01-03 14:27

이란 반정부 시위에 대외 패권 전략 바뀔까
시위대 불만, 과도한 대외 군사지원에 집중

(서울=연합뉴스) 유영준 기자 = 계속되는 이란 시위대의 불만이 영향력 확대를 위한 이란의 과도한 대외 지출에 집중되면서 이란의 중동 패권 전략이 바뀔 가능성이 주목되고 있다.
이란은 시아파가 인접 이라크의 실권을 장악한 데 이어 시리아와 예멘 내전에 개입하면서 역내 맹주를 놓고 사우디아라비아와 다툼을 벌이고 있다.
서방과 이슬람권의 공적이었던 이슬람국가(IS) 패퇴 이후 중동에 이라크와 시리아, 레바논을 연결하는 이른바 시아파 벨트를 구축한다는 야심을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헤즈볼라와 예멘의 반군 등 지역의 '대리인'들에게 상당한 인적, 물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에미리트(UAE) 등 막강한 재력을 가진 수니파 아랍국들과 출혈 경쟁을 벌이면서 내부적으로 커다란 정치적 대가를 치르고 있는 양상이다.
6일째 계속되고 있는 이란의 반정부 유혈 시위에서 시위대는 외국 분쟁에 개입하기 위한 정부의 과도한 재정지출을 집중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국내 인플레와 실업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십억 달러를 외국에 쏟아붓는 데 대한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시위대는 "시리아를 떠나라, 우리를 생각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정부에 대리인을 통한 외국 분쟁 개입과 사우디와의 지역 패권 경쟁 정책을 재고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이란의 현 하산 로하니 대통령 정부는 미국 등 서방과의 핵 합의를 통해 수백억 달러 규모의 동결된 자산을 회수했으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한 고위 성직자와 혁명수비대 등 보수 강경파지도부는 상당 부분을 경제 회생 대신 대외 군사지원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 영향력 확대와 사우디와의 경쟁을 주도하고 있는 혁명수비대는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직접 지시를 받고 있다. 혁명수비대와 친이란 민병대는 패망 직전의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회생시키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제공했다.
테헤란의 한 시위대는 WSJ에 "항의시위는 좌절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 "국민이 경제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의 돈 단 한푼도 외부에 사용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시위는 로하니 대통령 정부의 경제 관리 실패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됐으나 곧바로 지도체제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확대했으며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물론 그가 주도하는 이란의 대외 군사전략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반(反) 이란주의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이란 시위대를 응원하면서 현 이란 정부의 이러한 약점을 물고 늘어졌다.
"현명한 이란인들이 마침내 그들의 돈과 부(富)가 강탈돼 테러리즘에 낭비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고 꼬집었다.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이란 정권이 증오를 퍼뜨리는 데 수백억 달러를 허비하고 있다"면서 "이 돈은 병원과 학교를 짓는 데 사용됐어야 할 것"이라고 부추겼다.
이란은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회생시키기 위해 지난해 시리아에 1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했으며 이에 앞서 지난 2013년과 2015년에는 모두 56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한 바 있다. 여기에 이란산 원유도 상당 부분 제공됐다.
아사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인적 물적 자원을 대거 지원한 것이다. 시리아에는 5천 명 이상의 혁명수비대원이 파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또 헤즈볼라가 자리 잡은 레바논에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으며 긴밀한 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사우디 지원 정부군과 다투고 있는 예멘의 후티 반군과 이스라엘에 항쟁하고 있는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에도 이란은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인접 이라크의 경우 시아파가 다수를 점하고 있는 가운데 이란은 시아파 세력에 자금과 자문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대외 지원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이라크에 투입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란 정부는 그러나 국내의 악화한 경제 상황을 고려해 외부 지원 현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증가하는 대외 지원 부담을 반영하듯 로하니 대통령은 지난달 차기 회계연도 기간 증세 및 보조금 삭감과 함께 군사비 증액을 발표했다.
여기에 해외 출국세 증가와 연료 가격 인상, 서민층에 대한 현금지원 삭감 등 군사비 증액을 충당하기 위한 새로운 부담 조치가 결국 주민들의 불만을 촉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란 지도부가 현 시위 사태로 대외정책을 수정할지는 미지수이다. 이란 지도부가 아직은 대외 군사지원 활동을 국가안보에 긴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위기그룹(ICG)의 이란 프로젝트 책임자 알리 바에스는 현 이란 지도부가 단순히 시위대를 무마하기 위해 현 지역 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그동안 국내 시위에서 금기시돼왔던 최고지도자에 대한 비판이 노골화하고 시위 참여세력이 특정 분야가 아닌 사회 모든 분야로 확대한 점이 이전과는 다른 이번 시위의 심각성을 반영하고 있다.
결국 지도부가 현 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yj378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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