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앓던 미국인, 인천공항서 투신…"신변보호 소홀" 논란

입력 2018-01-04 07:50   수정 2018-01-04 17:26

조울증 앓던 미국인, 인천공항서 투신…"신변보호 소홀" 논란

가족 "항공사·공항공사 책임"vs 공항공사 "환승객 문제, 공사 책임없다"



(인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 평소 양극성 장애(조울증)를 앓던 중국계 미국인이 태국에서 LA로 가기 전 잠시 대기하기 위해 내린 인천국제공항 환승 구역에서 투신을 시도한 일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미국인의 가족은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항공사 측이 정신질환자라는 사실을 알고도 신변보호를 제대로 하지 않아 사고가 났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4일 인천국제공항경찰단과 인천공항공사 등에 따르면 지난달 중순 태국 여행을 하던 중국계 미국인 A(52)씨는 평소 앓던 조울증 증세가 나타나자 남은 일정을 취소하고 LA로 귀국하려 했다. 미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걱정한 가족들은 A씨가 탈 비행기 항공사인 싱가포르항공 측에 전화를 걸어 "관심을 두고 지켜봐 달라"고 요청했다. 항공사 측 이메일로는 조울증과 관련한 처방전도 보냈다.
A씨의 증상은 태국에서 싱가포르로 가는 기내에서는 진정됐으나, 싱가포르에서 환승해 LA로 향하던 중 다시 심해졌다.
그가 탄 비행기는 LA로 가기 전인 같은 달 18일 오전 9시 58분께 경유지인 인천공항에 착륙했고, 싱가포르항공 측은 상태가 좋지 않은 A씨를 인천공항공사 보안요원에게 인계했다.
싱가포르항공 직원과 인천공항공사 보안요원은 당일 낮 12시 30분께 미국 LA로 떠나는 비행기에 A씨를 태우지 않고 인천공항 환승 구역 내 호텔에 투숙하도록 조치했다.
이후 인천공항공사는 공사 대테러상황실을 통해 A씨를 '24시간 모니터링'했다. 혹시나 공항 내에서 기물을 파손하는 등 소란행위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A씨는 다음 날인 지난달 19일 오전 9시 23분께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내 환승 구역인 탑승동 4층에서 3층 로비로 투신했다.
A씨는 출동한 119구급대에 의해 인천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다행히 생명은 건졌지만, 중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공항공사 상황실은 사고 당일 A씨가 환승호텔에서 나와 탑승동으로 이동하는 것을 폐쇄회로(CC)TV 등으로 확인하고 인근에 있던 보안요원에게 근접해 감시하라고 지시했지만, 그의 투신을 막지 못했다.
최근 한국에 입국한 A씨의 가족은 "조울증이 심해지면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며 "인천공항에서 방치되다가 증상이 악화해 사고가 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보안요원이 근접 감시를 하던 중 제지할 틈도 없이 갑작스럽게 A씨가 추락했다"며 "항공사의 손님인 환승객에게 문제가 발생한 경우여서 공항운영자인 공사는 책임이 없다"고 해명했다.
싱가포르항공 관계자도 "A씨의 가족으로부터 사전에 주의를 당부하는 연락을 받았지만 이미 그가 관련 약을 먹고 비행기에 탑승했다"며 "이후 사고 상황도 항공사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A씨의 가족들은 조울증 환자라는 사실을 통보받고도 신변보호를 소홀히 했다며 항공사와 인천공항공사 측에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인천 지역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조울증 환자임을 알고도 제대로 살피지 않아 사고가 났다면 항공사나 공항공사 측에 업무상과실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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