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할머니를 7년째 가족처럼…전직 파출소장 '화제'

입력 2018-01-04 07:00  

수해 할머니를 7년째 가족처럼…전직 파출소장 '화제'
이재민 돕다 우연히 만나…수술맡은 경희대병원 지원방안 검토
하정복씨 "어르신 돕는 건 당연…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서울=연합뉴스) 김민수 기자 = 2011년 7월 27일. 경기도 동두천시는 오후 한때 450㎜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로 신천이 범람 위기를 맞으며 시내 곳곳이 물바다로 변해 아수라장이 됐다.
당시 수해로 동두천시에서는 6명이 숨지고, 주택 1천887채와 도로 72곳이 침수 또는 유실됐다. 이재민도 무려 600여 명이 발생했다.
동두천 파출소장이었던 하정복(남·63)씨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관할 지역 곳곳을 순찰하고, 이재민을 돕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응급복구가 한창 이뤄지고 있는 도중에 한 70대 여성 노인이 하씨의 눈에 들어왔다. 언뜻 보기에도 혼자 피해 복구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정봉숙(여·81)씨와의 첫 만남이었다.
정씨에게 직접 전후 사정을 들어보니 한국전쟁 때 피난을 와 홀몸으로 폐지 수집 등을 통해 근근이 생활하고 있었는데 이번 수해로 앞으로의 살길이 더 막막해진 상황이었다. 정씨의 남편은 1990년대 후반 지병으로 사망해 그를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하씨는 "경찰관이다 보니 '불우이웃을 항상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며 "수해를 겪어 더 난감한 처지에 놓인 정 할머니를 도저히 홀로 둘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때부터 하씨는 정씨 집을 매일 방문하면서 물심양면으로 정씨를 돕기 시작했다. 아내와 딸들도 하씨의 '의로운 행동'을 응원하고, 동참했다.
심지어 고령인 정씨를 더 잘 돌보기 위해 하씨는 지난 2014년 경찰관에서 퇴직한 후 아예 집 한 채를 마련해 가족처럼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하씨는 "정 할머니와 피 한 방울 섞이진 않았지만, 현재 우리 가족 모두 '친가족'처럼 지내고 있다"며 "내 뜻에 동의해준 아내와 딸들에게 너무나 고맙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씨의 몸 상태가 갑자기 심상찮았다. 평소 소화장애를 호소해 인근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복용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덜컥 겁이 난 하씨는 정씨를 경희대병원으로 데리고 가 자기공명촬영(MRI) 등 정밀 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 자궁탈출증, 방광류, 직장류 등이 동반된 심각한 배뇨장애 증상이 관찰됐다.
하씨는 "몸 상태가 그 지경에 이를 정도로 심하게 아팠지만, 정 할머니는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꾹 참아왔었다"며 "굳이 수술을 받지 않겠다는 정 할머니를 간신히 설득해 지난달 수술을 받게 했다"고 말했다.
수술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경희대병원 의료진은 정씨에게 자궁절제술·항문거근복원술·전후벽질벽 교정술을 시행했다.
정씨를 진료한 최영준 경희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현재 할머니 몸 상태는 양호하고, 불편했던 증상도 해소됐다"며 "정기적인 외래 검진만 잘 받으시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씨는 이제 한 가족과 다름없는 정씨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하씨는 "수해를 입는 어르신을 돕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세월이 이만큼 흘렀다"며 "교회를 다니는 정 할머니가 '나(하씨)를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앞으로 건강하게 여생을 보내시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런 사연을 뒤늦게 알게 된 경희대병원 측은 지원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보호자인 하씨가 워낙 헌신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그동안 쌓아온 정 할머니와의 인연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며 "현재 사회사업팀을 중심으로 정씨를 돕는 방안을 알아보고 있다"고 밝혔다.


km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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