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부러진 사다리'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많은 사람이 성과급 제도로 근로 의욕을 고취하고 성과를 키울 수 있을 것으로 믿지만, 과연 그럴까.
사회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이런 직관과 상식을 벗어난다.
캘리포니아대학 교직원들을 상대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임금 격차가 큰 경우 최저 임금 근로자의 만족도가 낮은 것은 물론 최고 임금 근로자들의 만족도도 커지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야구팀의 성적과 연봉의 상관관계를 추적한 연구에선 연봉 격차가 심한 팀일수록 승률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고액 연봉 선수의 개인 성적이 다른 선수들보다 좋았지만, 연봉 격차가 큰 팀 슈퍼스타들의 성적은 그렇지 않은 팀의 슈퍼스타들보다 나빴다.
연봉 불평등은 선수들의 의욕이나 성적을 높인 것이 아니라 팀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단결과 화합을 해쳤다는 것이 분석 결과다.
신간 '부러진 사다리'(와이즈베리 펴냄) 부와 지위의 불평등이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저자는 불평등과 차별의 심리적 영향에 관한 선도적인 연구로 주목받고 있는 키스 페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다.
빈곤이 건강에 해롭고 사람들의 나쁜 결정을 부추기고 사회적 불안정을 초래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상식이다.
책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의 행동에 관한 매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사람들은 실제론 가난하지 않아도 상대적 빈곤감만으로도 가난한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가난하고 위험한 환경에 처해 있어 잃을 것이 없고 미래가 불투명한 사람일수록 나중 생각은 하지 않고 눈앞의 이익과 보상을 좇는 근시안적인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게 된다.
어쩌면 이런 반응과 전략은 합리적이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범죄를 보상은 즉각적이고 비용은 나중에 청구되는 도박으로 본다.
가난은 '짧고 굵게', '빨리 살고 일찍 죽자' 같은 극단적인 현재주의를 조장한다. 이런 현상은 인간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서도 관찰된다.
문제는 사람들이 남들보다 잘살지 못한다는 주관적인 느낌만 가져도 실제로 못사는 사람과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 부와 지위에 대한 인간의 인지 방식이 상대적이고 주변 맥락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질적 부의 절대량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과 비교를 통해 빈부를 느낀다는 의미다.
상대적 빈곤감은 부와 지위의 불평등에서 비롯된다.
책은 사람들이 자신의 부와 지위를 낮게 느끼게 하는 불평등과 차별이 심해질 때 스스로의 장기 이익을 해치고 공동체를 위협하는 자멸적인 결정과 행동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나아가 살인, 폭력, 교육 저하, 유아 사망, 정신질환과 같은 많은 사회 문제들이 소득 자체보다 소득 불평등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설득력 있는 풍부한 통계지표들을 제시한다.
불평등이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인종적 편견을 증대시켜 사회적 갈등을 부추긴다는 증거도 있다. 불평등은 수명을 단축하고 스트레스와 질병을 유발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심지어 불평등은 못 가진 사람은 물론 가진 사람의 인성까지 파괴하고 행복도를 낮춘다. 실험 결과 불평등이 심할수록 성공한 사람은 더 큰 특권의식을 갖고 뻔뻔해지는 경향이 농후했다.
단순한 운에 의한 성공도 자신의 노력과 재능 때문에 보상받은 것으로 여겼으며, 독선적으로 변해 주변 상황에 대한 관심도가 낮았다. 비싼 승용차일수록 끼어들기를 더 자주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스스로 지위가 높다고 평가하는 사람일수록 부정행위를 할 확률도 높게 나타났다.
저자는 빈곤도 문제지만 불평등이 더 크고 보편적인 문제라고 본다. 불평등 자체가 위험한 행동을 초래하고, 불평등이 심한 지역일수록 나쁜 일들이 많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불평등이 심해지면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빈곤감을 느끼고 가난한 사람처럼 행동하게 된다. 머릿속에서 불평등과 가난은 빼닮아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면서도 가장 불평등한 미국을 생각하면 초강대국보다는 개발도상국을 연상시키는 특징들이 많이 떠오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영아 옮김. 280쪽. 1만4천800원.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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