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넷플릭스 無더빙 콘텐츠로 어린이 대상 외국어 노출↑
"글로벌 시대 좋은 기회" vs "정서 악영향, '앵무새' 교육 변질 우려"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오수진 기자 = 유튜브, 넷플릭스 등 동영상 플랫폼(서비스 공간)을 활용해 어린이에게 외국어를 익히게 하자는 붐이 일며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국외 동영상 플랫폼에 넘치는 영미권 만화나 아동 예능 등을 아이에게 대거 보여줘 외국어 몰입을 시키자는 것이 유행의 골자다.
이 방식은 적은 비용으로 외국어 노출 기회를 확대할 수 있고, 아이가 콘텐츠를 즐기면서 언어도 익히는 '일거양득' 장점이 있다.
그러나 교육 효과를 과신해 동영상에 너무 의존할 우려가 있고, 모국어(한국어) 습득·발달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있어 부모의 주의가 필요하다.
◇ 외국어 영상 '빅뱅' 시대
동영상 기반의 외국어 몰입 붐은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서비스가 어린이 콘텐츠를 급속히 강화하면서 본격화했다.
특히 유튜브는 '유튜브 키즈'란 아동 서비스를 2015년 별도 출범하고 LG유플러스 등 국내 IPTV에 대거 입점해 '킬러 채널'(인기 채널)로 탄탄한 인지도를 쌓았다.
유튜브 키즈에서는 한국 애니메이션 외에도 미국·영국·호주·일본 등의 만화와 장난감 리뷰 등은 물론 외국어 교육 영상도 볼 수 있다.
넷플릭스도 '어린이'(Kids) 계정을 따로 마련해 가족 내 아이가 좋아하는 글로벌 애니메이션이나 아동 영화를 볼 수 있게 한다.
소비자로서는 아이가 부담 없이 즐길 외국어 동영상이 급속히 늘어난 셈이다.
아날로그 시절 외국어 콘텐츠를 접할 기회라고는 주한미군 방송(AFKN)이나 위성방송, 비디오테이프가 전부였던 것과는 천양지차다.
작년에는 온라인 동영상을 보면서 5개 국어를 배운 여자아이 사연이 크게 알려지고,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리더 랩몬스터가 미국의 유명 토크쇼에 출연해 "시트콤을 보며 영어를 익혔다"고 말하면서 동영상 기반의 외국어 몰입 교육법이 더 퍼지는 계기가 됐다.
국내 IT(정보기술)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에서는 이미 넷플릭스 만화를 아이와 부모가 함께 보며 외국어를 익히는 문화가 정착됐다. 동영상 플랫폼을 교육 목적으로 쓰는 사례가 한국에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7일 내다봤다.
◇ 효과 맹신 금물…"쉬운 말 따라 하기가 언어습득은 아냐"
업체들이 외국어 콘텐츠의 교육 효과를 강조하며 관련 시장을 키워가는 추세지만, 미디어를 통한 조기 외국어 교육이 실제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다.
언어습득 이론 전문가인 원미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학계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 효과 여부를 단정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한다"면서 "단어의 발음을 익히고 쉬운 어휘를 외우는 측면에서는 도움이 되겠지만 이를 언어습득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언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소통 경험, 학습 등의 여러 요소가 필요한데 추상적 생각을 특정 언어로 정리해 논리 있게 풀어내는 능력은 영유아들이 말하는 수준과 완전 별개의 사안이라는 게 원 교수의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 2015년 육아정책연구소가 조기 외국어 교육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만 5세 유아를 대상으로 중국어 조기 교육 효과성을 실험한 결과, 비교 집단인 초등학교 3학년생이나 대학생보다 유아들은 교육을 받더라도 단어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연구를 진행한 이정림 육아정책연구소 기초연구팀장은 "실험 당시 아이들이 굉장히 재미있어하고 잘 따라 하는 거 같았다"며 "그 의미를 이해했는지 청각, 지각, 뇌파 운동 측정을 해봤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들이 학습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앵무새가 따라 하는 수준이었던 것"이라고 부연했다.
◇ '인터넷·미디어 중독' 등 부작용도 우려
영유아의 인터넷, 미디어 중독도 외국어 동영상 교육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 중 하나다.
2017년 육아정책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영아(2세)와 유아(5세)의 놀이·교육 목적을 합친 전자기기 노출 시간은 모두 하루 평균 2시간을 훌쩍 넘는다.
미국 소아과의사협회가 2세 이하의 영아는 TV나 다른 오락 매체에 노출돼서는 안 되며 2세 이상이라도 양질의 프로그램으로 1∼2시간 시청을 권장하는 것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영유아들은 상대적으로 미디어 기기에 노출된 시간이 긴 편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의 '2016년 인터넷(스마트폰) 과의존 실태 조사'를 봐도 만 3∼9세 유아동의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 비율은 1.2%였으며 잠재적 위험군 비율은 16.7%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어 콘텐츠를 아이들이 일방적으로 시청하기보단 시청 전후를 포함한 모든 교육 과정에서 부모, 친구와의 상호 소통이 수반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원 교수는 "외국어 동영상을 보여줄 때 우리말 습득에 영향이 없는지, 아이가 2개 언어를 섞어 말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지 면밀하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팀장은 "아이들은 영유아기에 외국어 교육 말고도 반드시 거쳐야 할 발달 단계가 있다"며 "(외국어 교육을) 안 해도 상관없지만 한다면 청각적으로 노출되는 정도가 적당하고 쓰기나 말하기 교육은 안 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토종 한국인으로서 원어민급의 유창한 영어 실력을 보여 화제가 된 유튜브 1인 방송인 김아란('아란TV' 채널 운영자)씨는 "일방적인 TV 시청만으로 언어 능력이 완성되진 않는다"며 "친구 등과 실제 외국어로 소통하거나 외국어로 공부하는 기회 등을 늘려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우리말 실력이 빈곤하면 이를 대체·번역하는 외국어 실력이 풍성해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우리말로 논리를 설명하는 능력 등이 잘 길러질 수 있도록 부모가 별도의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sujin5@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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