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안진 "사람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는 없죠"

입력 2018-01-07 10:00   수정 2018-01-07 10:08

유안진 "사람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는 없죠"
새 산문집 '처음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손자손녀들을 보면서 가치관이 많이 바뀌어요. 누구의 아이도 다 내 손자로 보입니다. 그렇게 귀한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장 나쁜 평화도 가장 좋은 전쟁보다는 낫다는 말이 와 닿아요. 사람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는 없어요."
산문 '지란지교를 꿈꾸며'로 유명한 유안진(77) 시인은 7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오랜 세월 글을 쓰고 성찰하며 다져온 생각을 이렇게 얘기했다.
그가 새로 펴낸 산문집 '처음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가톨릭출판사)에는 이런 철학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책에 있는 글 중 '사람이 희망이다, 살아있음이 희망이다'라는 글에서는 "사람은 상품 아닌 작품"이라며 사람의 고유한 가치를 이렇게 강조한다.
"비교하지 말자. 시력 청력 다 잃고 말조차 못하는 삼중 장애인 헬렌 켈러는 인간은 신의 작품(作品)이라고 했다지. 비교당하고 선택받는 상품(商品)이 아니라, 창조자가 각 인간을 독특하게 만든 유일무이한 작품, 이라고. 더 예쁘고 더 부유하고 더 잘난 사람을 선택하려고 비교하지 말라고. 삼중 장애를 가진 그녀는 자신이야말로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신의 최고 작품이라는 것을 깨닫고선 이를 선언하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단다." (145쪽)
그는 남편인 김윤태 서강대 명예교수를 2014년 갑작스럽게 잃고 삶의 이유를 많이 생각해보게 됐다고 한다. 자식의 고마움을 새삼 더 느끼게 됐고, 자신을 살게 하는 신의 뜻을 더 가까이 느끼게 됐다고 한다. 사람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 거지만, (남편이) 더 살 거라고 기대했는데 갑자기 수술이 잘못돼서…. 그것도 운명이고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자고 했지만, 그 고통이 굉장히 심합디다. 내가 무슨 가치가 있어서 사는가 많이 고민했는데, 신이 쓸모가 있어서 우리를 만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부모가 자식을 어떤 용도를 위해서 낳지 않는 것처럼요. 그렇다면 내가 신으로부터 어떤 소명을 받아 살고 있는가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후 그는 봉사하는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됐다고 했다.
"종교 잡지나 주보 같은 데서 글을 청탁하면 순종하는 뜻에서, 봉사하는 뜻에서 써 보내주곤 했습니다. 그동안 많이 받고 누렸으니, '내가 다른 재주나 체력이 없고 부실하니 글 끄적거리는 것 갖고라도 봉사를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나 산문들을 고료도 거의 받지 않고 썼죠. 그런 글로나마 나하고 같은, 비슷한 사람들과 공감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렇게 여러 잡지에 기고한 글을 묶은 것이 이번 책이다. 1965년 시인으로 등단해 50년 넘게 글을 써왔지만, 그는 여전히 책을 내놓으면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고 했다.
"글이란 것이, 특히 산문은 솔직하지 않으면 써지지 않아요. 자기 체험이 아닌 건 쓸 수 없죠. 그러고 보면 평생 자신을 벗기고 폭로하고 살아온 것인데, 자기 얘기를 한다는 게 늘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움이 없는 사람이 없듯이, 사람들이 읽고 '아, 나하고 같은 생각을 했구나. 별로 다르지 않구나'라고 생각해주면 안도도 되고 위로도 되는 거죠."
그의 대표작이 된 베스트셀러 '지란지교를 꿈꾸며'는 1986년 출간된 이래 아직까지 팔려나가 그조차 놀란다고 했다.
"책도 자기 운명이나 수명이 있나 봐요. 광고도 한 번 안 했는데, 이상하게 아직도 팔리네요. 큰 출판사도 아니고 그저 인연이나 친분으로 작은 출판사에서 수필집을 내왔는데, 그게 어려운 출판사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다행이죠. 또 내 글이 멋진 서예 작품이나 병풍, 나무에 새겨지는 것을 보면 황송하고 감사하고 부끄럽고 그렇습니다.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그 글을 강제로 암송시킨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내가 어린 시절 할아버지에게서 배운 천자문을 지금도 가끔 떠올리며 가르침을 얻듯이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내 글의 어떤 구절을 떠올린다면 좋겠지요."
38년째 같은 동네에서 살아온 그는 걷는 것을 좋아해 매일 동네 이곳저곳을 산책한다. 걸어 다니며 글의 영감을 얻는다는 그는 "내 발바닥이 머리구나 생각한다"며 웃었다.
"움직이면서 사물을 만나고, 제비꽃이나 강아지풀 같은 존재와 내 존재의 무게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신이 비슷한 무게로 창조하셨죠. 그런 동질감과 평등감, 생명과 목숨에 대해 생각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min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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