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근 국립고궁박물관 연구사 "용안 표현 단순해 미완성 가능성 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고궁박물관이 지난 2016년 미술품 경매에서 구매한 '세조 어진 초본'은 이당(以堂) 김은호(1892∼1979)의 작품이다.
이 그림은 이당이 조수 장운봉(1910∼1976)과 함께 1935년에 그렸는데, 1735년에 제작된 또 다른 세조 어진(御眞·임금의 초상화)을 보고 모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이당은 초본 외에 채색본인 정본(正本)도 만들었으나, 한국전쟁 직후 소실돼 초본만 남았다. 초본의 크기는 가로 131.8㎝, 세로 186.5㎝이다.
종이에 먹으로 그린 세조 어진 초본은 채색되지 않았으나, 곤룡포와 익선관을 착용한 임금이 자세히 묘사됐다. 어진 속 세조의 얼굴은 조카인 단종을 몰아낸 뒤 왕위를 찬탈한 인물치고는 둥글둥글하고 선량한 느낌이다.
임진왜란 이전에 재위한 임금을 그린 어진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세조 어진 초본은 귀중한 유물로 평가된다.
그런데 세조 어진 초본을 마주하면 과연 완성된 그림인지 의문이 생긴다. 신재근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최근 발간된 학술지 '고궁문화'에서 완성작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신 연구사는 "곤룡포를 장식하고 있는 문양 표현 등은 상대적으로 완성도가 높지만, 작업을 마무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며 "초상화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그리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용안이 단순하게 표현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초본에 묘사된 얼굴은 둥근 턱선과 이목구비의 윤곽만 단순하게 그려졌다. 특히 눈썹은 가늘고 흐릿한 필선(筆線)으로 형태만 나타냈다.
신 연구사는 "입체감이 거의 표현되지 않은 데다가 수염이 별로 없어서인지 세조의 얼굴은 앳되고 유순해 보이지만, 채색한 뒤에는 인상이 달라졌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초본이 미완성으로 생각되는 또 다른 이유로 인물 주변의 장식적 표현을 꼽았다. 특히 채전(彩氈·카펫)은 직사각형과 대각선만 그려놓아 매우 소략하다. 아울러 발을 두는 받침대인 족좌대는 왼쪽 발 근처에만 문양이 화려하게 들어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 어진 초본은 모두 미완성작이었을까. 이에 대해 신 연구사는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완성도가 높지 않은 상태에서 초본의 제작을 중단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신 연구사는 "조선시대에는 어진의 초본이 만들어지면 왕과 대신들이 품평하는 봉심(奉審)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초본의 완성도가 높아야 했다"며 "이당이 세조 어진을 제작할 때는 봉심이라는 절차를 수행할 여건이나 의지가 부족했을 수밖에 없어서 화가가 고유한 작업 방식과 필력을 고려해 초본을 그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신 연구사는 필선에서 수정된 부분이 많고, 일부에서는 선이 두껍고 고르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중요하고 정교한 필치가 요구되는 부분은 김은호가 직접 작업하고 단순 문양이 반복적으로 그려지는 부분은 장운봉이 그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국보로 지정된 '태조 어진'과 세조 어진 초본을 비교한 뒤 "양식적으로 상당 부분이 흡사해 세조 어진 초본이 15세기 어진의 양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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