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모래시계' 리뷰…"한국 창작뮤지컬만이 줄 수 있는 정서와 감동"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23년 전 '귀가 시계'로 불리며 초유의 흥행을 기록한 SBS TV 드라마 '모래시계'는 무대 위에서도 탄탄한 짜임새와 진한 여운으로 원작 콘텐츠의 힘을 드러냈다.
지난달 5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에서 개막한 창작뮤지컬 '모래시계'는 원작을 무리하게 비틀기보다는 원작의 미덕인 탄탄한 이야기와 복고적인 향수, 굴곡진 현대사와 맞물려 흐르는 세 남녀의 사랑과 좌절을 자연스럽게 무대 위에 풀어냈다.
24부작에 달하는 방대한 서사를 세 남녀의 우정과 사랑을 중심으로 잘 발라내 속도감·긴장감 넘치게 재구성한 점이 가장 눈에 띈다.
덕분에 드라마를 본 관객도, 보지 못한 관객도 이야기에 상당히 몰입하게 된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와 굴곡을 함께하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는 폭력 조직계 거물 '태수', 카지노 대부 윤재용 회장의 외동딸이지만 부정한 힘과 독재에 저항하는 '혜린', '태수'의 절친한 친구이자 굳건한 신념을 지닌 검사 '우석'은 브라운관뿐 아니라 무대 위에서도 매력적이다.
뮤지컬은 원작의 복고적 감성과 비장미를 유지하면서도 촌스럽거나 과하지 않게 균형을 잘 잡는다.
20여 년간 숱하게 패러디된 탓에 다소 유치하게 들릴 수 있는 "나 지금 떨고 있니?",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와 같은 드라마 명대사는 과감히 생략됐다.
대신 세 남녀의 감성적이고 울림이 깊은 멜로디가 드라마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태수가 혜린을 향한 사랑을 고백하는 '너에게 건다', 저마다의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부르는 '세상 너머로' 등은 막이 닫히고 나서도 귓가에 맴도는 넘버(노래)들이다.
유신헌법 철폐 투쟁과 5·18 민주항쟁, 삼청교육대 설치 등의 역사적 사건은 강렬한 군무와 합창으로 긴장감 넘치게 표현된다. 장황해질 수 있는 설명 대신 옛 신문·사진을 스크린에 비추는 방식을 택한다.
물론 24부작을 압축하다 보니 태수와 혜린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다소 급작스럽게 전개되는 등 아쉬운 지점도 있다.
그러나 유럽 왕실 옷을 입고 노란 가발을 쓴 채 공연되는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들에 지쳤던 관객에게 한국 창작뮤지컬만이 줄 수 있는 정서와 감동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몇몇 약점은 충분히 덮인다.
조광화 연출, 오상준 작사가, 김문정 음악감독 등 한국 창작진들의 노련함이 작품 이곳저곳에서 빛난다. 공연은 2월 11일까지.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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