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경 작가, 어느 때보다 힘들어해"…'황금빛 내인생'의 산고

입력 2018-01-13 10:00  

"소현경 작가, 어느 때보다 힘들어해"…'황금빛 내인생'의 산고
가족마저 버거운 세상에 대한 고찰…'기댈 곳은 결국 사람'임을 이야기
시청률 45% 눈앞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소현경 작가가 그 어느 때보다 이번 작품이 가장 힘들다고 토로하고 있어요. 집필의 어려움이 큰 거죠. 그만큼 이야기가 깊고 어렵습니다."
최고 인기 드라마 KBS 2TV '황금빛 내 인생'의 소현경 작가가 극심한 산고를 겪고 있다는 배경수 KBS CP의 전언이다.
소 작가의 산고가 클수록 시청률은 오른다. 지난 7일 36회에서 시청률이 42.8%까지 오른 '황금빛 내 인생'은 곧 45%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 드라마, 왜 인기일까.



◇ '막장'은 트릭…'가장 졸업' 선언·가족해체 고찰
출발은 전형적인 막장 드라마였다. '자식 바꿔치기'가 너무나 순식간에, 허술하게 펼쳐지며 납득하기 어려운 시작을 했다. 그러나 여느 '막장'이 다 그러하듯, 효과는 만점이었다. 강렬한 흡인력을 발휘하며 시작과 동시에 시청자들을 빨아들였다.
이렇게 판을 벌인 소현경 작가는 그러나 바로 '막장'을 버렸다. 도움닫기의 도구로 짧고 굵게 활용한 후 옷을 갈아입었다. 출생의 비밀에 편승한 전형적인 기승전결은 없었다. 대신 가족해체에 대한 고찰에 들어갔다. 불량식품 같은 '막장'의 짜릿한 전개를 욕하면서도 환호했던 시청자는 '고찰'이 깊어지자 '전개가 늘어진다'며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청률은 계속 오르고 있다. 어찌 됐든 전개가 궁금하기 때문이다.
생활고로 인해 가족해체에 내몰린 소시민 가정의 모습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다. 비루하고 지루하다. 소 작가는 각 인물의 마음속을 파고들다가도 마디마디 극적인 장치를 활용하면서 이탈하려는 시청자를 솜씨 좋게 붙들어두고 있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했고, 십수년 가족에게 풍족한 삶을 선사했던 아버지는 사업 실패 후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하면서 하루아침에 '무능한 가장'으로 전락한다. 정원 있는 집에서 세 자식들에게 비싼 과외를 시키며 살다가 전셋돈이 없어 절절매는 신세가 된 어머니는 딸을 바꿔치기하는 대범한 패륜 범죄를 저지른다.
유복한 유년기를 보내다 졸지에 가족 부양에 발목이 잡혀버린 장남은 대를 잇기는커녕, 결혼도 포기했었다. '흙수저'의 삶을 온 힘을 모아 극복하려던 똘똘한 장녀는 막다른 골목에 몰리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려 했다. 그 와중에 '천진난만 철부지'로 자라난 둘째 딸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나자 부모와 언니에 대한 배신감과 열등감을 연료 삼아 뒤늦은 반항을 하고 있다.
각박한 현실, 피붙이마저 '짐'이 돼버리고 체념과 포기가 일상화된 삶 속에서 가족들은 '자기희생'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각자의 가슴에 울분과 분노를 조용히 키워왔다. 이렇듯 아슬아슬했던 이 가족은 절망감과 상실감에 바닥을 친 아버지의 '가장 졸업' 선언과 함께 결국 터져버리고 만다. 가족의 '마지막 보루'였던 아버지는 "나는 당신을 먹여 살리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고 절규한다.
배경수 CP는 "가장의 책임감, 가장의 무게에 대한 소 작가의 이해와 공감이 깊다"며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실감에 휩싸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로 인해 진짜 위기를 맞게 된 가족이 서로를 돌아보는 이야기가 앞으로 펼쳐질 것"이라고 전했다.



◇ 재벌이라고 행복할까…탐욕·가식에 저당잡힌 삶
돈 때문에 자신들의 처지가 이모양 이꼴이라고 자조하는 서지안(신혜선 분) 가족의 반대편에는 돈이라면 넘치는 최도경(박시후) 가족이 있다. 재벌이다. 그러나 이 가족 구성원의 면면 역시 하나도 행복하지 않다.
회사를 일군 최도경의 외가는 탐욕에 사로잡혀 자매끼리도 모함하고 속인다. 회장인 외할아버지는 회사를 위해서라면 가족도 내칠 수 있고, '비 재벌' 출신인 사위는 대놓고 무시한다. 이들의 세계에서 필요에 따른 정략결혼은 의무이며, 숨을 쉬는 매 순간 남의 시선을 의식한 채 품위와 체면, 품격을 논하며 살아야 한다.



서지안의 가족이 '희생 프레임'에 저당잡혔다면, 최도경의 가족은 '상류층 프레임'이 만들어내는 '가식'에 저당잡혔다. 그러한 가식은 '내 딸이었으면 싶은' 서지안을 유전자 검사도 없이 자신의 딸로 확신하게 했고, 가슴 뛰는 사랑의 감정도 외면하게 만들었다. 아들이 가출해도 가족의 크리마스 만찬은 예년처럼 진행해야 했고, 가발을 뒤집어 쓰고 변장을 해야만 클럽에서 춤을 출 수 있게 했다.
그 속에서 진짜 '나'가 없는 것은 서지안네나, 최도경네나 같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공동체와 가족의 번영(혹은 생존)이라는 목적 아래 개개인의 삶, 솔직한 희로애락은 사라진다. 극성을 높이기 위한 양극단의 설정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이에 작가는 중간지점도 짚으며 현실감을 높인다.
서지안 아버지의 친구로, 베트남에서 성공한 사업가는 두 집 살림을 한다. 돈 걱정하지 않고 사는 그의 아내는 이를 알고도 모른 척한다. 돈이라는 달콤한 당의를 입었지만 알맹이는 곪은 가족이다.
이들의 반대편에는 카페를 운영하는 이혼녀와 고아 출신 빵집 주인이 있다. 과거 여자 가족의 욕심으로 헤어졌으나 돌고 돌아 어렵게 다시 맺어진 이 남녀는 지금 이 드라마에서 가장 행복한 인물들이다.



◇ 기댈 곳은 결국 사람…가족의 의미 확장
소 작가는 그래도 기댈 곳은 결국 사람 아니겠냐고 말한다.
연인이 있어도 경제적 이유로 인해 결혼을 포기한 장남을 설득해 짝을 맺어준 아버지의 마음, 약 먹고 산속에 쓰러져 있던 여성을 구해내 정성껏 돌본 촌로의 마음, 길에 버려진 아이를 데려다 20여 년 친딸처럼 키운 양부모의 마음, 돈의 힘으로 살아온 철부지 재벌가 아가씨의 눈물과 서러움을 위로한 가난한 아르바이트생의 마음 등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다.
또한 생의 의미를 잃었던 여자의 눈빛을 다시 살려낸 것도, 재벌가 장남의 '무일푼 독립'을 이끈 것도, 자녀를 낳지 않겠다던 남자의 마음을 변화시킨 것도 다 36.5도의 체온을 가진 사람이다.
대가족은 박물관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1인 가구가 대세가 돼 가는 세상, '황금빛 내 인생'은 가족의 해체와 함께 가족의 의미 확장을 동시에 연주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각자의 집을 나와 셰어하우스에서 동거하면서 크리스마스 파티도 함께 즐기는 이들의 모습은 편안하고 즐겁다. 오래 묵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따로따로 생활하는 목수 아버지와 두 자식의 삶도 불행해 보이지 않는다.
배 CP는 "소 작가의 글을 보면 정직하고 깨끗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며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고, 작품의 결과 수준도 남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소 작가가 '황금빛 내 인생'을 쓰면서 무척 힘들어하고 있지만, 그만큼 깊고 울림이 있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prett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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