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활주로 장기폐쇄 아픔에도 제설·제빙대책 미적지근
(제주=연합뉴스) 고성식 기자 = 1월 한파로 제주국제공항이 또다시 마비사태를 빚었다.
지난 11일 제주공항은 눈보라에 맥을 못 추고 3차례나 활주로가 폐쇄됐다. 여객기가 이륙하거나 착륙하지 못하는 운항 중단 시간은 5시간이나 됐다. 2016년 1월 23일부터 25일까지 42시간여 동안 전면 통제된 지 2년 만이다.
제주공항은 '관광의 섬' 제주도의 관문이자 국내선 항공기가 가장 많이 운항하는 기점이다. 중국과 일본 등 해외 노선과 연결된 국제공항이기도 하다.
이런 제주공항에서 활주로가 폐쇄되는 일이 2년 만에 반복됐다는 점에서 모든 탓을 자연재해로 돌릴 수만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활주로 폐쇄…제설능력 부족
11일 제주공항에서는 제설작업을 위해 3차례나 활주로가 운영 중단됐다.
당일 공항에는 4㎝ 안팎의 눈이 쌓이고 최대 순간 풍속이 12∼20m로 불었다.
한국공항공사 제주본부 관계자는 "제주에는 강한 북서풍으로 인해 단시간 내 강설이 집중되었다가 중단돼는 상황이 반복돼 제설작업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고, 야간에는 활주로 노면이 결빙돼 안전을 위해 활주로 운영을 중단하고 해빙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활주로에서 항공기가 이착륙이 가능해지려면 미끄럼 측정치 0.25 이상은 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최소 30분 이상 활주로 일시 운영 중단이 필요하다"며 "승객 불편을 최소화하려고 제설장비 투입과 동시에 미끄럼 측정을 하는 등 제설작업 시간을 최대한 단축했다"고 했다.
2010년 12월 초 영국과 독일, 스위스 등 서유럽에 몰아친 이상 한파와 폭설로 공항 4곳이 폐쇄된 적도 있다. 당시 서유럽 공항은 항공편 운항이 어려울 정도로 22㎝가량 눈이 쌓여 불편보다는 안전이 더욱 중요시됐다.
그러나 11일 제주공항의 적설량은 서유럽 한파나 2년 전 이례적인 최강 한파 당시 적설량 하루 최고 13㎝와 비교하면 턱없이 적다. 제주공항이 폐쇄되던 같은 날인 11일 광주와 무안공항에는 제주공항보다 많은 10㎝ 이상의 적설량을 기록했고 바람도 거세게 불었으나 활주로가 폐쇄되는 일은 없었다.
2년 전에 견줘 3분의 1 수준의 적설량에도 활주로가 폐쇄됐다는 사실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2016년 1월 당시에는 눈이 쉴새 없이 내렸으며 최대 순간 풍속도 초속 26.5m로 불었다. 여기에 기온마저 영하 6.1도까지 내려가 내린 눈을 얼어붙게 했다.
제주공항에는 현재 고속송풍기 1대와 일체식 제설차량 4대, 제설자제 살포 차량 3대 등 총 10대의 장비가 있다.
공항공사는 11일 새벽에 제설장비를 대거 투입, 활주로 제설작업을 진행했으나 공항을 운영한 지 1시간 30여분 만인 오전 8시 33분께 활주로를 폐쇄하고 다시 제설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오후 6시 30분, 오후 10시 55분에도 제설작업을 위해 활주로를 추가로 폐쇄했다.
제주공항은 2년 전 한파로 42시간이나 활주로를 닫아야 하는 치욕적인 아픔을 겪었으나 제설차량은 추가 배치 없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한국공항공사 관계자는 "제설차 4대 중 노후화된 2대를 교체하고 고속송풍기 장비 3대를 추가 확보했다"며 "제설제도 171t을 보유, 기존 128t보다 충분히 유지해 폭설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항공기 기체에 언 얼음을 녹이고 결빙을 방지하는 제빙(除氷)·방빙(防氷) 시설도 부족해 운항이 재개돼도 지연 운항이 속출했다.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등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여러 타이틀을 보유하면서 제주도를 직항으로 연결하는 항공노선이 증가하고 있으나 제주공항에는 제방빙 시설이 4곳에 불과, 유비무환과는 거리가 먼 상태다. 김포공항 11곳에 비해서는 턱없이 적은 편이다.
이 때문에 항공기가 제방빙을 하는 데 걸리는 20여분 동안 다른 항공기는 차례를 기다리며 대기해야 했다.
승객을 태운 항공기가 계류장에서 제방빙 장으로 가는 데도 2∼3분이 소요되며 제방빙 이후 활주로에 가는 데도 10분가량 소요된다.
11일처럼 비슷한 시간대에 많은 항공기가 제방빙을 한 뒤 이륙해야 하는 상황이면 평소보다 출발이 30분 이상 지연될 수밖에 없다.
운항이 재개된 12일 오전 8시대에는 항공기가 제방빙을 하느라 시간당 출발편이 4편에 불과했다. 대략 15분에 한 편씩만 이륙해 한때 제주공항 운항 최대능력의 22%에 그치게 하는 주요인이 됐다.
◇ 달라진 체류객 대책…"합격점"
11일 폭설로 온종일 항공편 운항이 차질을 빚은 제주공항에서 밤을 지새운 체류객은 대략 2천500명이다.
제주도 등은 체류객 지원 매뉴얼을 '경계'로 설정했다가 체류자들이 많아지자 '심각' 단계로 격상, 대책을 추진했다.
경계단계는 청사 내 심야 체류객이 500명 이상 발생하면 발령된다. 심각은 이보다 많은 1천명 이상 체류객이 발생하는 경우다.
그에 따라 매트리스·모포 2천700세트, 생수 7천500병 등을 체류객에게 지원했다.
택시들이 공항에서 시내로 체류객들을 수송하도록 협조도 요청했다.
안내대를 설치해 의료와 숙박도 안내했으며 무료 셔틀버스를 투입, 숙소로 가려는 결항편 승객들을 태웠다.
도와 제주지방항공청,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는 2016년 1월 23∼25일 기록적인 한파와 폭설로 제주공항이 마비됐던 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비상상황에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통합 매뉴얼을 운영하고 있다.
통합 매뉴얼은 관심, 주의, 경계, 심각 4단계로 상황을 구분해 경보를 발령하고, 단계별 대책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이에 따른 대처로 수천명이 체류객이 발생했지만 큰 혼란이 없이 심야 시간 체류객 문제가 마무리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년 전 한파와 폭설로 활주로가 장기 폐쇄됐을 당시 저비용항공사가 순번제로 대기표를 배부하는 바람에 여객터미널 내 체류객들이 대거 발생하자 휴대전화 문자 등으로 탑승 항공편을 안내하도록 개선했다
이번엔 항공사마다 휴대전화 문자로 결항 편에 대해 안내하고 탑승 편에 대한 정보를 승객들에게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문자 정보를 보낸 시각이 늦거나 탑승 편이 마땅하지 않아 수송이 늦어지는 문제도 있었으나 저비용항공사들의 대처는 공항 체류객을 줄이는 데는 큰 몫을 했다.
kos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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