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다이하치 "학생 때 읽은 소설 드디어 영화로"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 아버지 생일을 맞아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네 가족은 눈도 잘 마주치지 않고 표정들이 심드렁하다. 잘 나가는 기상캐스터인 아버지는 몰래 만나는 회사 동료의 전화를 받으러 자리를 비운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영화 '아름다운 별'은 도입부만 보면 평범한 가족 드라마 같다. 그런데 아버지 주이치로(릴리 프랭키 분)가 의문의 사고를 당하면서 이야기는 저 멀리 나아간다. 운전 중 번쩍하는 빛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보니 밭두렁에 처박혀 있다. 주이치로는 자신이 화성인임을 깨닫는다.
그즈음 아들과 딸도 특별한 정체성을 확인한다. 배달원으로 일하는 아들 가즈오(가메나시 가즈야)는 수성에서, 대학생 딸 아키코(하시모토 아이)는 금성에서 왔다. 가즈오는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진 정치인의 일을 돕기 시작하고, 아키코는 미의 기준을 재정립하기 위해 미인대회에 나간다. 어머니 이요코(나카지마 도모코)는 지구인인데, 다단계로 생수를 판다.
아버지는 TV 뉴스에서 날씨를 전하며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시청자들에게 설파한다. 대담 프로그램 현장에 난입해 기후변화 문제에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국회의원과 설전을 벌이기도 한다. 지구인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할 때마다 두 다리를 꼬고 하늘을 향해 양팔을 벌린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반복한다. 이 정도면 방송사고 수준이다.
아키코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독특한 손동작으로 금성과 교신한다. 장르가 SF라고는 하지만 별다른 특수효과도 없이 가족들의 개성 넘치는 말과 행동을 차례로 보여준다. SF이면서 코미디, 가족 드라마이기도 하다. 요시다 다이하치 감독을 이메일로 만났다.
"학생 시절에 소설을 읽고, 마음 속에서 계속 떠나지 않았어요. 그 이후 몇 번이나 영화화를 시도했지만 이번에 겨우 실현할 수 있었죠."
'아름다운 별'은 미시마 유키오가 1961년에 발표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일본 탐미주의 문학의 거목으로 꼽히는 그의 작품 목록에서 유독 튀는 소설이다. '기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2013), '종이 달'(2014) 등을 연출한 요시다 감독 역시 기상천외하고 엉뚱한 설정만으로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SF'를 추가했다.
"원작은 미국과 소련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핵전쟁의 공포를 다루고 있어요. 영화에서는 지구온난화의 위협으로 변경했습니다."
50여 년 전의 소설인 탓에 핵심 소재에 변화를 줬지만, 인류가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는 상황은 동일하다. 영화에는 위기에 빠진 지구를 살려내기 위해 인간이 개입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주이치로와 인간도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인 비서 구로키가 논쟁을 벌인다.
제 손으로 만든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자연에 더 깊이 개입할 것인가, 아니면 인류 절멸도 자연순환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멸망하는 길을 택할 것인가. 요시다 감독은 영화의 핵심 주제를 담은 이 토론 부분을 각색하는 데 공을 많이 들였다.
"논리적으로는 구로키, 심정적으론 주이치로." 지구와 자연의 관계를 바라보는 감독 개인의 견해다. 그는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해 "정말 그것이 인간에 의한 문제인지 지금은 다소 의문을 가지고 있다"며 "그렇다면 인간은 해결책을 갖고 있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태풍이 지나가고' 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들로 국내에 잘 알려진 릴리 프랭키는 시치미 뚝 떼고 화성인을 연기하며 영화를 이끈다. "현실로부터의 비약을 두려워하지 않는 귀중한 배우죠. 릴리 프랭키 이외의 후보는 없었습니다." 그의 독특한 몸동작은 "우주와 교신할 때, 더욱 신체적인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것이라는 확신을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시다 감독은 최근작 '금구모궐'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지석상을 받았다. 작년 5월 프랑스 칸영화제 출장 중 심장마비로 별세한 김지석 전 부산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를 기리는 상이다. 요시다 감독은 "새로 제정된 상의 첫 번째 수상자라는 점, 앞으로 그 역사가 쌓여나갈 거라는 점을 생각하면 너무나 영광스럽고 기쁘다"며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해서 인간 그 자체를 바라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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