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의 자유 허하라'…성에 관대한 프랑스 전통도 옛말

입력 2018-01-13 06:30  

'유혹의 자유 허하라'…성에 관대한 프랑스 전통도 옛말
카트린 드뇌브 등 100인 르몽드 기고문 반박·재반박…파장 이어져
프랑스의 세대·계층·인종에 따른 性 인식차 여실히 드러나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배우 카트린 드뇌브 등 프랑스 여성들이 남성 유명인들의 성 추문과 관련해 "남자들에게 청교도주의적인 과도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고 주장한 글의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해당 글에 대한 반박과 재반박이 이어지면서 성(性)에 대한 프랑스만의 유별나게 관대한 문화가 도마 위에 오르는가 하면, 이번 논란으로 프랑스의 세대와 계층에 따른 성을 둘러싼 인식의 격차가 여실히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프랑스의 '기품있는 사랑' 전통?…"남성의 여성 지배 공고화 기제"
우선 영·미권 국가들과 다른 프랑스만의 독특한 성에 대한 개방적이고 관대한 인식이 다시 한 번 논란의 중심이 됐다.
특히 학자들은 '멋진 남성'들에게 여성을 자유롭게 유혹할 권리가 있다는 오래된 프랑스의 전통이 현대 사회의 새로운 성 윤리와 충돌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문화사학자인 미셸 페로는 프랑스 공영 AFP통신과 인터뷰에서 "남자가 여성을 유혹하는 것이 프랑스의 문화의 한 표현 방식이라고 여기는 것에 프랑스인들이 중독돼 있다"면서 "이는 프랑스에서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를 은폐하는 기제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물론 이탈리아, 스페인 등 이른바 라틴 문화권은 청교도적 전통이 성의 문화를 강하게 지배한 영·미권과 달리, 성에 대해 자유롭고 관대한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다.
프랑스의 여성학자 프랑수아즈 피크에 따르면, 이런 관습은 수 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중세 때부터 우리는 이런 행동양식을 '기품 있는 사랑'이라고 불렀다"면서 여성을 소재로 한 시(詩) 등 문학적 전통도 이런 인식에 기반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전통은 여성이 지위 상승을 좌절시키고 남성의 소유물이 되는데 만족하게 하는 왜곡된 전통"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런 프랑스에서도 2011년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다소 바뀌기 시작했다.
프랑스 대선의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였던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뉴욕의 한 호텔 방에서 호텔 여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IMF 총재에서 물러난 것은 물론, 대통령의 꿈까지 접는 일이 있었다.
프랑스 정계는 그동안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인 폐쇄적 구조 속에 공인의 사생활에 구체적인 언급을 꺼리는 특유의 사회 분위기가 겹쳐지면서 성 의식이 왜곡됐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분위기에서 스트로스 칸의 사건은 프랑스인들에게는 자국 이미지에 먹칠을 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이 사건 후 프랑스에서는 '프랑스의 유력 대선주자가 외국에서도 프랑스에서처럼 행동하다가 제대로 걸렸다'는 식의 여론이 형성됐고, 여성단체들이 대거 비판에 가세하면서 공인 남성들의 사생활을 여론의 도마에 올리는 문화가 퍼졌다.
원래부터 공인의 사생활을 적극적으로 보도해온 미국 언론들과, 소셜네트워크(SNS)라는 발언 창구를 갖게 된 시민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면서 그동안 '공인의 허리 아랫부분'에 대한 보도를 자제해온 프랑스 언론의 태도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마크롱, '캣콜링' 등 처벌 추진…"유혹의 자유? 파리 상류층 전유물"
특히, 남성의 여성에 대한 유혹에 관대했던 프랑스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것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취임 이후 프랑스 정부의 움직임에서 읽힌다.
프랑스는 정부가 나서 거리에서 여성들에게 추근대는 남성들을 처벌하기로 하고 관련 법규를 준비 중이다.
거리에서 낯선 여성들에게 심한 추파를 던지거나 성희롱을 일삼는 이른바 '캣콜링'(cat-calling) 행위에 대해 즉결 과징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여성을 상대로 한 성희롱이나 추행에 강력한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들을 대거 정계에 입문시키고 내각에 기용한 마크롱 대통령의 '관심 사안'이라고 한다.

드뇌브 등 프랑스 여성 예술인 100인이 르몽드에 기고한 '남성의 유혹의 자유를 옹호한다'는 글은 프랑스 전반에 만연한 인식이라기보다는 파리 상류층 예술계 인사들에 국한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관습을 초월하는 섹슈얼리티'를 예술적 창작의 원천으로 보는 인식은 파리의 기득권 상류층과 백인 문화·사교계의 전유물이라는 것이다.
드뇌브의 선언에 참여한 여성이 대부분 백인 장년·노년층에, 부유한 계층에 속한다면, 이를 정면으로 반박한 글(프랑스텔레비전 기고)을 쓴 30인의 여성은 인종과 계층 등의 분포가 현대 프랑스 여성들의 인식을 훨씬 더 대표한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드뇌브는 75세이고, 여성운동가 30인을 규합해 드뇌브의 시각을 비판한 여성운동가 카롤린 드 아스는 37세다.
한 프랑스인 트위터 유저는 드뇌브 등 여성 예술인 100인의 글에 대해 "그들은 돈도 많고 경호원에 운전기사도 있다. 한밤에 혼자서 지하철을 타 보라. 그런 다음에 다시 얘기해보자"고 말했다.
yongl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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