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꿈나무들과 함께 뛴 차범근…온가족이 뛴 일반인 참가자도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김예나 기자 = 13일 오전 8시35분께 눈발이 흩날리는 가운데에도 서울 상암동 디지털매직스페이스에는 일단의 시민들이 모였다.
이들은 금빛 장식이 달린 흰 횃불대 위로 불길이 타오르자 일제히 "우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풍물패들도 축제의 순간을 기억하려는 듯 꽹과리와 북을 울려댔다.
평창올림픽 성화가 나흘간 서울을 순례하는 성화봉송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횃불 모양의 팻말과 '평창올림픽 파이팅', '평창?마포' 등이 적힌 펼침막을 든 시민들은 평창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응원하며 감격스럽게 성화 점화를 지켜봤다.
서울지역 첫 주자로 나선 이는 2014년 소치올림픽 예선에 참가했던 프리스타일 스키 선수 박희진씨였다.
박 선수가 성화를 들고 뛰기 시작하자 시민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연신 사진을 찍었다.
박 선수는 "서울에서 첫 주자로 뛰게 돼 영광"이라며 "불을 꺼트리지 않고 올림픽 선수들에게 뜨거운 열정을 전하겠다"고 성화봉송 주자로 뛰게 된 소감을 전했다.
성화의 불꽃은 곧이어 '토치 키스'를 통해 서울지역 두 번째 주자이자 일반인 주자인 최필용씨에게 전달됐다. 최씨는 아내, 두 딸과 온 식구가 함께 뛰는 모습을 선보였다.
최씨의 아내는 "평창올림픽에 관심이 없어서 남편이 성화봉송 주자로 나선다고 해 시큰둥했다"면서도 "이렇게 나와 보니 평창올림픽의 열기를 새삼 느끼게 된다"고 감동을 전했다. 최씨의 딸들도 "아빠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오전 9시께 눈을 맞으며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앞을 지난 성화는 '차붐'으로 불리는 17번째 주자인 차범근 전 축구 감독에게 전달됐다.
미래의 축구 꿈나무 6명과 함께 성화를 봉송하게 된 차 전 감독은 "한국 축구가 지금 어렵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미래 한국 축구의 주인공들과 함께해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다"며 "평창 파이팅! 우리 미래 한국 축구 파이팅!"이라고 외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차 전 감독이 뛰기 시작하자 '차범근! 차범근!'이라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자녀들에게 "저분이 차범근 감독이야"라고 설명하는 한 남성의 표정은 자녀들보다 더 신이 난 듯 즐거움에 가득 차 있었다.
'축구 꿈나무'로 함께 뛴 이동현(15)군은 "이렇게 성화봉송에 참여해 뛰는 것도, 차 감독님과 함께하는 것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기뻐했다.
성화봉송 행사의 주인공은 주자들만이 아니었다. 현장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시민들의 표정도 벅차올랐다.
모자와 마스크를 쓴 채 응원하러 나온 시민 김모(60)씨는 "1988년 서울올림픽 성화봉송은 못 본 터라 마침 우리 동네가 성화봉송 구간이라고 해 시간 맞춰 운동하다 나왔다"며 "평창올림픽이 성황리에 잘 끝났으면 좋겠고 북한 선수들도 와서 좋은 성과를 내 남북이 하나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편과 함께 나온 김지연(47)씨는 "성화봉송 현장을 지켜보니 많이 들뜨고 기쁘다"며 "스피드스케이팅 이승훈 선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금메달을 딸 것으로 기대한다"고 응원했다.
상암동 디지털매직스페이스를 출발한 성화는 합정역사거리와 용산구 전쟁기념관을 거쳐 오후 6시30분께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도착할 때까지 23.4㎞를 달린다.
이날 성화봉송 주자로는 '비정상회담' 출연진인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와 서장훈 전 농구선수, 이상민 삼성썬더스 농구팀 감독, 정대세 축구선수, 양학선 체조선수, 평창올림픽 유치위원장을 지낸 조양호 한진 회장, 스켈레톤·봅슬레이 선수로 유명한 강광배 한국체육대 교수 등이 참여한다.
알베르토 몬디 씨는 "영광이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지만 세계가 하나가 되는 자리라는 생각을 하며 뛰려고 한다"며 "국적과 관계없이 모두가 함께하는 것이 올림픽 정신이므로 한국에서 이렇게 성화봉송에 참여하는 것이 큰 의미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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