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우정' 이세돌-커제 "역시 바둑은 사람과 둬야"

입력 2018-01-13 18:31  

'알파고 우정' 이세돌-커제 "역시 바둑은 사람과 둬야"
해비치 대국 후 "존경하는 선배 "발전하는 후배" 덕담 릴레이



(서귀포=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기본적으로 바둑은 인간 대 인간이 두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세돌(35) 9단은 13일 제주도 해비치호텔에서 열린 '2018 해비치 이세돌 대 커제 바둑대국'에서 커제(21) 9단과 명승부를 펼치고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세돌 9단은 이날 엎치락뒤치락 접전 끝에 293수 만에 흑 1집 반으로 승리했다. 우승 상금 3천만원과 현대자동차 '코나'를 부상으로 받았다.
그러나 이세돌 9단의 미소에는 우승의 기쁨 그 이상이 담겨 있었다.
이세돌 9단은 "좋은 기사와 바둑 하는 것은 언제나 좋다"며 대국 자체에 큰 의미를 뒀다.
커제 9단은 10대에 주요 세계대회를 휩쓸고 현재 중국 바둑랭킹 1위를 지키고 있는 천재 기사다.
특히 2015·2016년 삼성화재배에서는 준결승에서 이세돌 9단을 꺾은 기세를 몰아 2년 연속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2016년 몽백합배에서는 결승에서 이세돌 9단을 제압하고 정상에 섰다.


세계대회 전적만 봐도 이세돌 9단과 커제 9단의 인연은 각별하지만, 둘의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구글 딥마인드가 내놓은 바둑 인공지능 '알파고'과 대적한 세계에서 둘뿐인 프로기사라는 점이다.
이세돌 9단은 2016년 알파고의 인간계 데뷔 무대인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에서 1승 4패를 거뒀고, 커제 9단은 2017년 5월 알파고의 '탈인간계' 선언식인 '바둑의 미래 서밋' 3번기에서 3패를 당했다.
기계에 쓰라린 패배를 당하면서도 인간의 도전 의식을 보여줬다는 묘한 동료의식을 느끼는 두 사람이다.
커제 9단은 "우리 둘 다 인공지능과 대결을 해서 동질감을 느낀다. 당시에는 아주 괴로웠다. 그러나 우리 둘만 알파고와 대결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아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커제 9단은 그뿐 아니라 "우리는 아주 오래된 연분이 있다. 이세돌 9단과는 세 번이나 이런 이벤트 대국을 했다. 몽백합배 결승 등 세계대회에서도 만나서 인연이 깊다"며 "존경하는 선배와 이렇게 계속 만나서 기쁘다"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이세돌 9단도 후배 커제 9단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세돌 9단은 "커제 9단은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기사다. 지금은 알파고를 이기기 어렵지만, 커제 9단이 더 발전하면 이겨주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용기를 줬다.


이세돌 9단은 또 "기본적으로 바둑은 인간 대 인간이 두는 것"이라며 "인공지능보다는 커제 등 좋은 기사, 좋은 선배님들과 두는 게 조금 더 바둑의 본질에 가까운 승부가 아닌가 생각해본다"며 바둑의 의미를 되짚었다.
커제 9단도 "오늘 내가 대국한 상대가 알파고였다면 후반기에 어떤 기회도 오지 않을 거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과 뒀기에 후반에 상대가 실수하지 않을까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내가 실수해서 졌다. 이게 바로 인간과 기계의 차이점"이라며 인간 바둑의 묘미를 강조했다.
1983년생인 이세돌 9단과 1997년생인 커제 9단은 바둑과 알파고를 매개로 시대와 국적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고 있다.
abbi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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