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이매진] '낙동강이 허리춤에' 나각산 숨소리길

입력 2018-02-11 08:01  

[연합이매진] '낙동강이 허리춤에' 나각산 숨소리길
'걷고 싶은 길' 54번째 이야기…MRF이야기길 제6코스

(상주=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북한산 둘레길, 제주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해파랑길, 내포문화숲길, 올림픽 아리바우길 등 전국 곳곳에는 걷기 좋은 길이 많아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자체들은 지역의 산길, 마을길, 숲길, 관광지 등을 잇는 도보여행 코스를 구축해 새로운 문화관광 콘텐츠로 활용하고 있다.



상주에는 산길(Mountain Road), 강길(River Road), 들길(Field Road)이 합쳐진 MRF이야기길이 있다. 상주의 아름다운 산야를 두루 둘러볼 수 있도록 15개 코스로 이뤄진 이 길은 모두 원점으로 회귀하게 만들어졌고, 코스마다 이름이 있다. 1코스는 낙동강 칠백리길(9.2㎞, 2시간 50분), 2코스는 덕암산 초원길(19.6㎞, 5시간), 3코스는 낙동강길(10.8㎞, 3시간 15분), 4코스는 아자개성길(23.1㎞, 6시간 30분)이다.
5코스는 물소리길(15.9㎞, 4시간 5분), 6코스는 나각산 숨소리길(7.7㎞, 2시간 10분), 7코스는 가야길(6.7㎞, 2시간 15분), 8코스는 이전길(8.13㎞, 2시간 13분), 9코스는 소금길(8.4㎞, 2시간 25분), 10코스는 장서방길(8.5㎞, 2시간 25분)로 불린다. 또 11코스는 바람소리길(11.1㎞, 2시간 55분), 12코스는 똥고개길(8.9㎞, 2시간 40분), 13코스는 천년길(16㎞, 3시간 55분), 14코스는 자산산성길(6.6㎞, 1시간 35분), 15코스는 너추리길(7.4㎞, 2시간)로 명명됐다.
코스별로 거리는 6.6㎞에서 23.1㎞로 다양하고, 걷는 데 1시간 35분부터 6시간 30분이 걸린다.
MRF이야기길과는 별도로 백화산 호국길(11.3㎞, 3시간 40분), 우복동 속리산 동천길(5.6㎞, 2∼3시간), 성주봉 한방둘레길(사랑의 길 4㎞, 1시간 30분/ 행복의 길 3.5㎞, 1시간 20분), 할미산 곶감길(4.6㎞, 1시간 5분)이 있다.
코스 중 낙동리 들판을 지나 나각산을 넘어 낙동강을 허리춤에 끼고 걷는 '나각산 숨소리길'은 나각산(螺角山·해발 240.2m)을 중심으로 들길과 산길, 강길을 아우른다. 속리산에서 뻗어 나와 낙동리 마을 북쪽에 솟아있는 나각산은 낙동리에서 보면 마치 소라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숨소리길은 소라껍데기에 가만히 귀를 대면 물결소리인 듯 숨소리가 들려온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김광희 문화관광해설사는 "1천300리에 달하는 낙동강은 태백 황지에서 600리나 흘러와서 상주에서 비로소 강다운 모습을 갖춘다"며 "상주 사벌면 퇴강리의 낙동강 칠백리 표지석에는 '낙동강 칠백리 이곳에서 시작되다'라고 쓰여 있다"고 말한다.



◇ 나각산 정상, 산·강·들판이 한눈에

출발점은 상주와 의성을 잇는 낙단교 입구의 낙동강 한우먹거리촌이다. 상주의 가장 남쪽에 있는 이곳에서 낙동강을 등지고 도로를 건너면 낙동강 유역에서 유일하게 '낙동'(洛東)이라는 지명을 가진 낙동리의 중심지다. 예부터 낙동나루로 유명하던 이곳은 조선 시대 원산, 강경, 포항과 함께 우리나라 4대 수산물 집산지로 꼽혔다.
부산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온 소금배와 상선, 상인들로 북적거렸다. 나루터와 우시장, 객주와 주막은 흔적조차 사라졌고 우체국·파출소·중학교 등의 공공시설과 함께 줄지어 늘어선 다방이 어렴풋이 옛 영화를 짐작하게 한다.
마을 중심에 있는 파출소 앞에서 낙동중학교 교문 앞을 거쳐 들길로 발길을 옮긴다. 황량한 들녘 사이로 드문드문 한우축사가 보인다. 이웃 시·군의 한우들이 구제역 파동으로 곤욕을 치를 때도 전국 최대의 한우 사육지인 상주의 한우들은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낙동강 한우먹거리촌에서 25여 분 발품을 팔면 나각산 등반길 입구가 나타난다. '나각산 정상 1.4㎞'라는 안내표지판이 서 있는 산길 입구에는 산악회 리본 50여 개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낙엽이 융단처럼 두툼하게 깔린 산길로 든다.
척추처럼 휘어진 좁은 길에는 동글동글한 차돌이 박혀 있고, 리기다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동네 뒷산 산책하듯 800m 정도 산길을 따르면 '옛길 갈림길'이라고 적힌 이정표를 만난다. 나무꾼이 다니던 옛길은 낙동강 역사이야기관으로 이어진다. 옛길을 버리고 체스트풀머신·트위스트머신·싯업머신 등 운동기구를 지나면 나무 계단이 이어진다. 나무 계단은 제법 가파르고, 두 사람이 스쳐 지나가기도 비좁다.



한참 코를 박고 계단을 오르다 보면 테라스 형태의 전망대가 나타난다. 발아래 낙동강 물줄기와 낙동강과 낙동리, 상주와 의성을 잇는 낙단교와 낙단대교, 상주낙동강교(당진영덕고속도로), 낙동강대교(상주영천고속도로), 낙단보가 한눈에 들어온다.
뒤편의 거대한 바위는 마치 자갈 콘크리트 덩어리 같다. 어른 주먹만 한 차돌이 듬성듬성 박혀 있는데 진안의 마니산처럼 그 옛날 강바닥이었던 땅이 치솟아 산이 된 역암층이다. 바위 곳곳에는 부처손이 봄을 기다리고 있다. 부처손은 늘 푸른 여러해살이풀로 겨울에는 잎이 오그라들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봄이 되면 잎이 활짝 펴지며 살아난다.
테라스 전망대에서 100m를 더 오르면 '나각산 240.2m' 라고 새겨진 표지석과 함께 나각정이 우뚝 서 있다. 표지석 뒷면에는 나각산 유래가 새겨져 있는데 상주 MRF 동호회는 매월 넷째 주 토요일 정기 탐방을 하고 있다.



"국토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나각산은 소라형국의 풍요와 부(富)를 상징하는 산으로, 백두산에서 뻗어내린 백두대간의 속리산과 일월산, 팔공산의 정기가 모이고, 낙동강과 위강의 강 기운이 한데 어우러진 삼산이수(三山二水)로 예로부터 큰 도시가 들어설 명당터라 한다. 특히 이 산에 세 번 오르면 뜻을 이루고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산의 정기와 강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마귀할멈굴에서 소원을 빌면 아들을 낳는다는 영험한 아름다운 상주의 명산이다. 2011.4.21 상주 MRF동호회 회원 일동"
낙동강 최고의 전망대로 꼽히는 나각정에 오르니 상주 전역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사방이 막힘없어 가슴이 탁 트인다. 이리저리 굽이치는 낙동강 너머로 잔설이 남은 토봉과 일월산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우뚝 솟은 비봉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팔공산 북쪽 기슭에서 출발한 위천(渭川)이 낙동강과 만나는 벼랑인 천인대(天人臺), 매화락지(梅花落地)의 명당에 앉아있는 풍산 류씨 우천파 종택인 수암종택(지방문화재 민속자료 제70호)이 한눈에 들어온다. 첩첩이 이어지는 산자락과 절벽, 하얀 눈으로 뒤덮인 낙동강 겨울 풍광은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시킨다.
청명한 날에는 속리산 천왕봉뿐만 아니라 청화산, 대야산, 일월산 등이 보인다.



◇ 출렁다리 걷는 재미 '쏠쏠'

정자에서 내려와 좁다란 능선을 따라가면 숨소리길의 명소인 출렁다리다. 2010년 개통한 출렁다리(길이 30m, 폭 1.7m)는 비록 짧은 거리지만 거센 바람이라도 불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찔하다. 출렁출렁 댄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출렁다리'를 건너면 깎아지른 절벽 위에 낙강정이 솟아있다.
정자에 오르면 나각정 못잖게 사방이 확 트인 조망이 시원하다. 너른 들판을 적시는 낙동강 물줄기와 물량리 마을, 비행기 폭격장인 낙동사격장이 한눈에 훤히 들어온다.
강과 산, 마을로 둘러싸인 사격훈련장은 비행 사격훈련장으로 최적의 조건을 갖춰 1953년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한·미 공군 전투기의 공대지 사격훈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차디찬 겨울바람이 귓전을 때린다. 고개를 돌려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나각산은 그리 높지는 않지만, 기암과 출렁다리, 소나무숲이 어우러진 산세가 제법 옹골차다.



팔각 정자에서 바윗길을 조금 내려서면 갈림길과 마주친다. 직진해 20여 분 하산하면 물량리 마을이고, 바위 옆 산길로 방향을 잡으면 부처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소원바위가 반긴다. 절벽의 틈새에 돌을 던져 얹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바위 위로 출렁다리가 지나간다. 산죽밭을 지나면 신선과 봉황 알의 전설을 품고 있는 마귀할멈굴이 반긴다. 대여섯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굴속에는 봉황 알 크기의 강돌이 박혀 있던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마귀할멈굴을 지나면 좁은 산길이 이어지고, 눈이 낙엽 위에 소복이 쌓여 있어 제법 미끄럽다. 산길을 내려서니 4대 강 사업으로 조성된 '국토종주자전거길'이다. 여기서 3㎞ 떨어진 낙단보까지는 시멘트로 포장된 자전거도로다. 낙동강 줄기를 왼쪽 허리춤에 끼고 걷는다. 꽁꽁 얼어붙은 강 위에 흰 눈이 덮여 있다.
하늘과 강이 맞닿은 겨울 풍경에 마음을 뺏긴 채 얼어붙은 강 위로 유유자적 걸어본다. 언 강 위 눈밭을 걷는 호사(?)를 누린 뒤 다시 발걸음을 내디딘다. 길섶에 있는 찬물내기, 생태·체험공간인 낙동강 역사이야기관, 낙단보 수상레저센터를 거치면 낙동강에 만들어진 8개의 보 중 하나인 낙단보가 길게 누워 있다. 낙단보 끄트머리 옆 깎아지른 벼랑 위에는 낙동강변 3대 누각으로 꼽히는 관수루(觀水樓)가 강을 굽어보며 앉아있다. 관수루는 '낙동강을 바라보며 정취를 즐긴다'는 뜻이다.
차디찬 강바람을 맞으며 제방을 타박타박 걷다 보면 어느새 낙단교와 먹거리촌에 닿는다. 낙단교는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말 대통령 선거 유세 당시 다리를 세워주기로 공약한 후 선거철의 단골공약이 됐고, 무려 14년 만에 완공됐다. 이곳 사람들은 지금도 '선거 다리'라고 부른다. 낙단보를 건너 관수로를 거쳐 낙단교로 돌아올 경우 50분 정도 더 걸린다.


chang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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