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대석 서울대 교수, 연명의료 문제 다룬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2014년 삶을 어디서 마무리하고 싶은지를 묻는 조사에서 57.2%가 '집'을 택했고 '병원'이라고 답한 사람은 16.3%에 불과했다. 그러나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사망한 28만명 중 집에서 임종한 사람은 15.3%뿐이었고 75%인 21만여명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았다.
생의 끝자락에서 죽는 장소까지도 스스로 선택하기 어려운 것은 '연명의료' 문제 때문이다. 회생할 가능성이 없어 사실상 임종과정에 들어섰다 하더라도 인공호흡기 등에 의지해 생명을 연장하다 보니 병원에서 연명의료를 받다 사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종양내과학 전문가인 허대석 서울대 교수는 신간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글항아리 펴냄)에서 30년간 의료현장에서 경험한 삶의 마지막 풍경들을 보여주며 임종에 직면해서 연명의료를 어느 정도까지 시행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이제 사회적으로 새로운 죽음의 문화를 논하고 합의점을 찾는 일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은 환자의 권리 측면에서 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존엄사 논의의 본질은 '존엄사냐 안락사냐'가 아니라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자기결정권 존중은 현실에서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당사자가 미리 연명의료에 대한 제 생각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족들이 당사자의 의사를 존중해 대리 결정하는 일도 있지만, 가족들 간에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문제를 두고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위암 진단을 받은 40대 초반 남성은 암이 악화해 호흡이 점차 어려워질 정도에 이르자 더는 치료를 받지 않고 호스피스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며 편안한 최후를 맞기를 원했다. 그러나 부모와 아내는 그를 놓지 못했고 계속 치료를 원했다. 환자는 결국 가족의 뜻을 따랐고 치료를 계속 받았지만 효과는 없었고 부작용만 계속되다 9일 후 사망했다. 저자는 이 환자가 마지막 수개월 받았던 항암치료가 환자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묻는다.
환자가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라면 자신의 상태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 문화상 말기 환자에게 직접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쉽지 않아 많은 환자가 자신이 말기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환자에게 불치병임을 알려야 한다는 데 환자의 96%가 찬성했지만 실제 말기상태임을 알고 있는 환자는 26%에 불과하다는 한 조사결과가 있다.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대해 환자가 사전에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데는 70% 이상이 찬성하지만 심폐소생술 금지 동의서(DNR)에 서명하는 환자는 0.002%뿐이라는 조사도 있다.
의료분쟁을 고려해 연명의료 문제에서 방어적 태도를 보이는 의료진의 문제도 있다.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은 의료진들이 방어적 태도를 보이게 된 계기 중의 하나다. 뇌수술 후 인공호흡기로 연명하게 된 환자에 대해 부인이 퇴원을 요구했다. 병원측은 '퇴원하면 사망할 수 있다'고 알렸지만 부인은 퇴원을 강행했고 결국 환자는 사망했다. 이후 부인에게는 살인죄가, 담당 의사에게는 살인방조죄가 적용돼 실형이 선고된 사건이다.
책은 다음달 4일부터 시행되는 연명의료결정법(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의 시행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두고도 의료 현실과 동떨어진 면이 있어 앞으로 보완작업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연명의료결정법은 자기결정권에 대한 법이긴 하지만 한국은 전통적으로 환자에게 무엇일지를 주로 의료진과 가족이 상의해 결정하는 만큼 법과 문화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혀나갈 것인가가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라고 강조한다.
"연명의료 문제는 법을 시행하고 단속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어떤 모습으로 삶을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사회가 함께 생각하고 새로운 규범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다." 256쪽. 1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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