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스크린에서 김상경의 캐릭터는 크게 두 갈래였다. 우선 '생활의 발견', '극장전', '하하하' 등에서 홍상수 감독의 페르소나로서 보여준 지질함. 반대편에는 '살인의 추억'의 서울 형사 서태윤으로 시작해 '화려한 휴가'의 시민군 강민우로 완성한 집념과 우직함이 있다.
24일 개봉하는 영화 '1급기밀'에서 그가 연기한 박대익 중령은 후자다. 집에서는 딸 바보에, 직장에서는 고지식할 만큼 원칙을 지키다가 따돌림마저 당한다. 차렷 자세로 주먹을 굳게 쥐고 거수경례를 절도 있게 올려붙이는 박 중령은 국방부 과장보다는 야전부대 중대장이 더 어울린다.
'살인의 추억' 이후 경찰 역할은 여러 번 했지만, 군인은 처음이다. 김상경은 영화의 모티프가 된 군 내부고발의 실제 인물들에게 조언을 들으며 박 중령 캐릭터를 완성했다. 17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상경은 "군을 떠난 지가 꽤 됐는데도 만나서 얘기해보면 여전히 군인 같더라"며 이들의 몸에 밴 군인 특유의 '각'을 익히려 애썼다고 말했다.
"실제 있었던 사건들과 가족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영화에도 나오지만, 한직으로 보내 일병과 책상을 함께 쓰게 하거나 집에 협박전화가 온 일들이 모두 팩트예요. 김영수 소령은 엘리트 군인으로 안정적인 미래가 있는 분이었어요. 군내 감찰과 검찰에 신고도 해봤는데 전부 무마됐다고 해요. 2∼3년을 그렇게 싸웠는데 답이 안 나오니까 얼굴을 가리고 나와서는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 거죠."
재작년 별세한 고 홍기선 감독이 2009년부터 기획한 '1급기밀'은 방산비리라는 민감한 문제를 소재로 삼은 탓에 제작단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김상경은 출연료를 적게 받아가며 영화에 참여했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가볍지 않다. 그러나 김상경은 "방산비리는 보수와 진보가 손을 잡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정치적인 영화라는 선입견을 경계했다.
"제작비를 마련하기 힘들었다고 해요. 정부에 관한 내용을 다루면 투자가 잘 안되는 때가 있었잖아요. 영화는 일단 만들어야 하니까 개런티를 좀 깎았죠. 홍기선 감독님이 영화운동 1세대인데다가 사회적 문제를 다루시니까 어쩔 수 없이 정치색이 입혀지는데요. 전 정부도 방산비리 척결하자고 했잖아요. 촬영하면서 감독님과 정치 얘기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정치적 성향에 대한 '오해'는 영화뿐 아니라 김상경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에 출연한 게 컸다. 김상경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연한 거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인터넷에서는 '빨갱이 배우'로 찍혔더라"며 웃었다.
'1급기밀'은 방산비리가 끊이지 않는 군의 고질적 관행과 내부고발자의 고통에 집중하는 묵직한 영화다. 김상경은 "옳지 않은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한다"며 영화가 사회에 울림을 주기를 바랐다.
"전 정부에서 방산비리 얘기를 많이 하다가 지금은 많이 묻혔어요. 방산비리는 이순신 장군 때부터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심각하게 다뤄야 한다고 정치인들도 유행처럼 말하다가 지금은 없어졌죠. 큰 힘과 결탁된 느낌도 있어요. 영화가 가진 힘으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면 파급효과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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