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참사 한달] ② "꽃다운 우리 손녀 어쩌나" 유족들 고통의 나날

입력 2018-01-18 08:01  

[제천참사 한달] ② "꽃다운 우리 손녀 어쩌나" 유족들 고통의 나날
유족들 "갑작스럽게 떠난 가족…믿기지 않아 잠 못 이뤄"
부상자들 트라우마 시달려…소방관들 "못 구했다" 자책

(제천=연합뉴스) 김형우 기자 = "3월이면 대학갈 꽃다운 나이인데…우리 손녀딸만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요. 천사 같은 우리 다애를 그렇게 쉽게 데려간 하늘이 야속해요"
지난 16일 오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제천체육관.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의 부부는 손녀 김다애(18) 양의 영정사진을 멍하니 바라보며 울먹였다.



참사가 나고 거의 한 달이 다 됐지만, 김양의 할아버지(80)와 할머니(72)는 여전히 손녀가 이 세상에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참사 한 달 전 숙명여대 합격증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보낸 뒤 자랑했던 손녀딸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아른거린다.
이들이 기억하는 손녀는 다정다감하고 누구보다 살가웠다.
"성실하고 똑똑한 아이여서 인생을 사는 낙이었다"고 노부부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평소 끔찍하게 아끼던 손녀가 예고도 없이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그들은 하늘을 원망했다.
할아버지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안 잡아가고, 천사 같은 우리 손녀딸을 데려 같으니…"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양은 참사 당일 스포츠센터로 운동하러 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던 김양은 숨지기 직전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앞이 안 보인다', '문도 안 열린다'는 말이 가족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이 돼 버렸다. 건물 9층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김양은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됐다.
김양의 아버지는 생업인 장사를 아예 포기했다. 딸을 죽음으로 내몬 정확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를 밝히기 위해 진력하고 있다.
김양의 할머니는 "아들을 포함해 우리 가족 전체가 잠도 제대로 못 이루고 있다"며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힘든 상태"라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김양의 죽음은 비단 가족만의 아픔은 아니었다.
크리스마스이브였던 작년 12월 24일 김양의 발인식에는 300여명의 제천여고 학생들과 교사들이 참석,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김양의 친구들은 지금껏 정신적인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번 참사로 목숨을 잃은 29명의 위패가 모셔진 합동분향소는 지금도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합동분향소의 한쪽 벽면에는 희생자들이 남겼던 각종 사진과 추모 글귀를 적은 포스티잇이 빼곡히 붙어있다.
'엄마 거기에선 행복해. 하고 싶었던 거 다해 사랑해', '더는 대한민국에 이러한 일이 안 일어나길…이민 가는 생각이 안 들길 간절히 빌어 봅니다''소녀 같은 우리 엄마 사랑해' 등 글귀마다 유가족의 그리움과 애통함이 고스란히 묻어있다.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만큼이나 육체적·정신적인 충격이 크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피해자들도 있다.
불길이 치솟는 화재 현장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부상자들이다.
오죽했으면 류덕건 유가족 대표가 "부상자는 희생자 가족 못지않게 중요한 분들이니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지자체에 호소하기도 했다.
지난 17일 제천 서울병원에서 거의 한 달 가까이 치료를 받고 퇴원한 50대 여성에게 있어서 이번 참사는 악몽이나 다름없다.
이 여성은 "인명 피해가 가장 많았던 2층에서 가까스로 탈출했다"며 "아비규환이었던 당시 상황이 아직도 생생하고 꿈에서까지 반복된다"며 극심한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세를 호소했다.



부실 대응 논란으로 유족의 날 선 비판과 유례없는 경찰 수사까지 받게 된 소방관들도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들은 화재 참사를 막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일부 소방관들은 천직으로 삼았던, 사람을 구하는 일이라고 자부심으로 버텼던 이 직업을 그만두고 싶다고도 한다.
한 소방관은 "누구도 제천 참사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제대로 구조를 못 했다는 점 때문에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하고 혼자서 끙끙 앓고 있다"고 제천소방서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제천시는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제천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충북 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가 참여한 심리안정지원팀을 운영 중이다.
시는 화재 진압에 투입됐던 소방관이나 참사 현장을 목격한 일반 시민에게도 심리치료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윤용권 제천시 건강관리과 과장은 "사상 초유의 화재 참사가 일어난 만큼 시민들 역시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라며 "유족과 부상자, 시민 등의 아픔을 보살필 수 있는 대책을 마련,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vodcast@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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