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매일 어린이집 반창회"…미세먼지가 낳은 진풍경

입력 2018-01-18 14:58   수정 2018-01-18 15:09

"병원에서 매일 어린이집 반창회"…미세먼지가 낳은 진풍경
정부기관 차량 2부제 시행에 주변 도로 불법주차 늘어
톨게이트 요금징수원 등 마스크 없이 근무하는 극한직업도


(서울=연합뉴스) 사건팀 = 출근해야 하는 딸을 대신해 매일 4살 손녀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이모(58·여)씨는 최근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소아과에 갔다가 어린이집 반창회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일주일 넘게 콜록거리는 손녀가 안쓰러워 하원 후 찾아간 어린이집 근처 병원에서 같은 반 아이들을 4명이나 만난 것이다.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된 아이들이 아픔도 잊은 채 반갑다고 깔깔거리며 웃는 것을 보고 있자니 이씨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미세먼지가 야속해졌다.
이씨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차를 갖고 나가지 말라고 하던데 이렇게 매캐한 공기를 이 어린아이한테 쐬게 할 수 있겠느냐"며 "집에서 병원까지 10분도 채 걸리지 않지만, 차를 타고 왔다"고 말했다.
18일 서울 등 수도권에서 미세먼지(PM 10)와 초미세먼지(PM 2.5)가 닷새 연속으로 기승을 부리자 시민들은 "눈, 코, 목 등 안 아픈 곳이 없을 정도"라며 "살기 힘들다"고 울상을 지었다.
주부 정모(55)씨는 "살면서 호흡기 질환을 앓아본 적이 없는데 최근 들어 비염이 심해져서 병원에 다니고 있다"며 "미세먼지 탓에 없던 질병이 생기고 나니 약국에 가면 마스크를 먼저 찾게 되더라"고 토로했다.
직장인 김모(31·여)씨는 "어제 밤새도록 목이 화끈거리고 두통에 미열까지 있어서 죽다 살았다"면서 "요 며칠 동안 마스크를 안 끼고 돌아다녀서 그런 것 같아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스크를 구매했다"고 말했다.

길가에는 마스크를 착용한 시민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마스크를 하지 않은 시민들은 목도리, 넥워머 등에 얼굴을 파묻어 코와 입으로 들이마시는 미세먼지 양을 최소화하려 했다.
갓 걸음마를 뗐다는 아들의 손을 잡고 길을 가던 진모(36·여)씨는 "은행에 꼭 가야 할 일이 있는데 애를 맡길 곳이 없어서 데리고 나왔다"며 "마스크에 후드까지 싸매기는 했지만, 아이를 이런 곳에 나와 있게 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라고 말했다.
지하철 공덕역에서 만난 최모(54)씨는 "집에 미세먼지용 마스크 두 개가 남아 있길래 두 딸에게 쓰고 가라고 하고 나는 대책 없이 나왔다"면서도 "귀찮아서 그냥 다니기는 하는데 나이 쉰 넘은 나 같은 사람한테도 공기가 너무 안 좋게 느껴져서 목도리로라도 막고 있다"며 목도리를 코까지 끌어올렸다.

실제로 약국 등에서 마스크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이 증가했다고 약사들은 입을 모았다.
서울 강남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한 약사는 "안 그래도 독감 때문에 마스크가 많이 나갔는데 이번 주에는 미세먼지 때문에 판매량이 더 늘었다"며 " 지난주와 견줘서도 거의 10배 가까이 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스크를 수입·판매하는 도매상인 두원사이언스 관계자는 "어제·오늘 들어 마스크 주문량이 지난주와 비교해 6배가량 늘었다"며 "독감보다는 미세먼지 때문에 마스크 판매량이 늘어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 때문에 마스크를 끼지도 못한 채 미세먼지를 그대로 들이마셔야 하는 '극한' 직업군도 있었다. 남산터널 등 톨게이트 요금징수원들과, 경희궁·덕수궁 등의 문 앞을 지키는 수문장들, 쉼 없이 물건을 옮겨야 하는 배달원들이 그랬다.
중구 무교동 식당 앞에서 배달하기 위해 트럭에서 짐을 꺼내던 50대 남성 박모씨는 "마스크를 쓰면 숨이 차서 도저히 일을 못 하겠더라"면서 "나 같은 사람은 미세먼지는 그냥 참고 살아야 하는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서울시의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발령에 따라 서울시청과 각 구청 등 공공기관 360곳의 주차장이 폐쇄되자 차를 끌고 민원업무를 처리하러 왔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전 짬을 내 광진구청에 민원접수를 하러 온 서모(33)씨는 차가 들어가는 입구가 완전히 막힌 것을 보고 한숨을 내신 뒤 핸들을 돌려 다른 주차장을 찾으러 갔다.
차량 2부제를 실시하는 문화·복지 공공시설이나 경찰서·법원 등 정부기관 인근 도로에는 차량 끝 번호가 홀수인 차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늘어섰다. 직원들이 짝수차량에 한해서만 주차장입구 개폐기를 열어줬기 때문이다.
시내 한 법원에 재판을 받으러 왔다는 최모(57)씨는 법원 입구에서 "재판이 10분밖에 안 남았으니 한 번만 봐달라"며 직원과 승강이를 벌이다 결국 도로에 불법주차를 해놓고 부리나케 법원으로 들어갔다.

run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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