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사이 수로 형성 만입형…자연과 시간이 만든 생태 보고
2006년 국내 연안 습지로는 처음으로 람사르 협약 가입
(순천=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전남 여수에서 순천을 잇는 863번 지방도는 푸른 바다와 맞닿아 있다.
겨울비가 개인 오후 구름 사이로 쏟아진 햇빛에 수평선이 반짝였다.
파도는 바람에 일렁이고 물이 빠진 갯벌은 S자형으로 물길이 났다.
갯벌은 꼬물꼬물 움직인다.
살아있는 것들은 살기 위해 부지런히 몸을 부린다.
어머니 품처럼 따뜻하게 파도를 보듬은 곳, 순천 와온 해변이다.
'해는. 이곳에 와서 쉰다. 전생과 후생. 최초의 휴식이다'(곽재구 시 '와온 바다' 중)
시인은 와온 해변을 사랑했다.
'따뜻하게 누워있는 바다'라는 뜻의 '와온'(臥溫)은 어머니 품처럼 푸근하다.
바다를 향해 전진하듯 뻗은 갯벌이 아니라 순천만 갯벌은 바다를 품에 안은 형국이다.
57.02㎢에 달하는 보성∼순천 갯벌은 섬들 사이로 깊은 수로가 형성돼 있는 만입형(해안이 활 모양으로 구부러진 오목한 지형) 다도해 갯벌로 분류된다.
여수반도와 고흥반도가 에워싸고 있는 항아리형 모양이다.
순천만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용산전망대에 오르니 갯벌과 갈대밭이 장관을 이뤘다.
순천을 가로질러 흐르는 동천이 바다와 맞닿은 곳에는 갈대가 군락을 이뤘다.
가을이면 빨갛게 물들어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칠면초 군락도 갈대와 함께 공존하고 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순천만 갯벌은 S 자형으로 수로가 났다.
황금빛으로 물든 수면 위로 흑두루미와 기러기, 청둥오리가 먹이를 찾아 한가롭게 유영했다.
순천만 습지를 찾은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철새들이 날아와 지친 날개를 풀고, 갯벌을 비추던 태양도 서서히 사라졌다.
보성∼순천만 갯벌은 매우 오랜 세월 동안 퇴적물이 조금씩 쌓여 만들어졌다.
입구가 좁고 내부가 넓은, 호리병과 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이번에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한 국내 갯벌 가운데 가장 넓은 염습지(salt marsh)군락이 발달해 있다.
바닷물이 드나들어 염분 변화가 큰 염습지는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양한 갯벌 생물들이 포식자로부터 도피하는 은신처로 쓰이고, 뜨거운 태양열로부터 생물체의 건조 및 온도상승을 막아준다.
대형 저서동물과 붉은발말똥게, 갯게, 대추귀고둥, 기수갈고둥과 같은 보호대상 해양생물들에게 안정적인 서식지를 제공한다.
물새들에게는 번식지와 휴식지로, 너구리와 같은 육상동물은 갯벌생물을 섭식할 때 이동하고 은신하는 장소로 이용한다.
보성∼순천만은 담수 영향을 받아 염습지 생성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풍부한 영양분을 가진 보성∼순천만은 꼬막을 비롯해 낙지, 짱둥어, 칠게 등 다양한 갯벌 동물이 산다.
전남대 전승수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장도를 중심으로 한 여자만은 8천500년에 걸쳐 느리게 퇴적이 일어난 곳으로 다른 갯벌에 비해 바다의 힘이 작고 담수 유입으로 염습지가 잘 형성돼 있다"며 "금강에서 시작한 퇴적물이 돌고 돌아 가장 먼 곳까지 와서 쌓인 곳"이라고 말했다.
순천만은 1990년대만 해도 순천을 가로지르는 동천 하구와 갈대밭, 갯벌 생물들이 살던 터전이었다.
1992년 순천만 하구는 버려진 채 방치됐고 1993년 민간업체의 골재 채취사업이 알려지면서 순천만은 주목을 받았다.
순천만의 갈대숲을 보전하려는 시민과 시민단체들이 나서 결국 사업이 무산됐고 1996년 본격적인 생태조사가 시작됐다.
조사 결과 순천만의 생태적 가치가 인정돼 골재채취 사업은 취소됐고 2003년 해양수산부 갯벌 습지보호구역 제3호로 지정됐다.
2006년에는 국내 연안 습지로는 처음으로 국제적인 습지에 관한 협약인 람사르 협약에 가입해 국내외에 알려졌다.
이러한 노력으로 천연기념물 제228호인 흑두루미가 1996년 처음 발견됐으며 이후 개체 수가 꾸준히 늘어 지난해만 2천176마리가 찾았다.
문화재청이 순천만을 비롯해 서남해안 갯벌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신청에 나선 데 대해 순천 시민들의 기대감은 남다르다.
방치되다시피 했던 갯벌의 미래 가치를 알고 시민과 NGO, 지자체가 함께 나서 적극적으로 생태 보전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외 습지생태 전문가와 지역 주민대표, NGO 등 30명으로 구성된 순천만습지위원회를 구성해 주민 참여를 확대했다.
세계 5대 연안습지로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은 순천만은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생물권보전지역 등재를 추진해 아름다운 생태자원을 후손에게 물려줄 준비를 하고 있다.
순천만에서 20여년째 고기를 잡고 있는 김만석(66)씨는 "숭어와 전어, 낙지를 주로 잡는데 이곳 낙지는 펄에서 자라서 육질이 연해 고소한 맛이 일품"이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지금처럼 잘 보존되길 바란다"고 바랐다.
오병은(39) 그린순천21 사무국장은 "순천만을 보존하면서부터 시민들은 생태와 환경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며 "주민이 직접 나서 흑두루미를 위해 빛가림 막을 설치하고 시에서도 대안 농업을 지원하는 등 민과 관이 협조하고 있는 만큼 생태환경도시로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minu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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