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60년 넘게 '한국 과학기술사' 연구에 매진한 원로 과학사학자 전상운 전 성신여대 총장이 지난 15일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86세.
고인은 커다란 돌에 천체의 형상을 새긴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덕수궁 광명문에 있는 물시계 '자격루', 조선시대에 제작된 천문시계인 '혼천의 및 혼천시계' 등 과학 문화재 18건이 1985년 일제히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함경도 원산 출신으로 한국전쟁 때 월남한 고인은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역사학을 배우고 일본 교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6년부터 성신여대에서 학생을 가르쳤고, 한국과학사학회장과 성신학원 이사장 등을 지냈다.
국사편찬위원, 문화재위원으로도 활동한 고인은 자신의 인생을 '과학 문화재를 찾는 나그넷길'에 비유하곤 했다. 그는 1966년 저서 '한국 과학기술사'를 통해 과학기술사라는 학문을 알렸고, 1975년 이 책의 개정판을 간행했다.
그는 한국 과학기술사의 개정판을 10년에 한 차례씩 내겠다고 마음먹었으나, 2000년이 돼서야 우리 문화재를 과학사적 관점에서 조명한 '한국 과학사'를 펴냈다. 이어 2016년에는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시대별 과학 문화재를 통사 형태로 정리한 '우리 과학 문화재의 한길에 서서'를 출간했다.
고인은 평소 우리나라의 과학 문화재가 중국과 서양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독창적이고 뛰어난 가치를 지녔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청동기시대 동검과 거푸집, 청동거울의 제작 기술을 분석한 뒤 이 유물들이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면서 당시 한반도가 고도의 금속문명 단계에 들어선 상태였다고 역설했다.
그는 '우리 과학 문화재의 한길에 서서'에서도 "우리가 물려받은 과학유산은 결코 격이 낮거나 세련되지 못한 것이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롭게 조명하고 재인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인 고인은 외솔상, 국민훈장 동백장, 세종문화상, 대한민국문화유산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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