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스러우면 신고해야…업계 대상 홍보·행정지도 필요"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김예나 기자 = 만취한 50대가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구입해 여관에 불을 질러 5명이 숨졌다. 방화범들이 주유소에서 구한 휘발유를 범행에 이용하는 일이 잦지만, 막을 방법도 딱히 없는 상황이다.
20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종로5가 여관에 불을 지른 피의자 유모(53)씨는 앞서 이날 오전 2시40분에서 3시 사이에 여관 인근 한 주유소를 찾아가 2만원을 내고 휘발유 약 10ℓ를 샀다. 당시 유씨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
해당 주유소 관계자는 "새벽 근무자 말에 따르면 크게 이상은 없었는데 술에 취한 것 같았다고 한다. 용기와 기름을 같이 샀다"며 "소방서에서 이후 나와 휘발유를 적법하게 판매했는지 조사했다"고 전했다.
주유소에서 차량에 직접 주유하지 않고 별도 용기로 유류를 판매하는 것은 법적으로 가능하다. 규정된 용기에 품명과 용량 등을 정확하게 기재하면 된다. 차량 연료가 떨어지거나 난방 연료가 필요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범죄자들이 방화 목적으로 주유소에서 인화물질을 구입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작년 10월 부산에서는 주점에서 술을 마시던 한 40대가 여종업원과 시비 끝에 "불을 지르겠다"고 위협하고 밖으로 나가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사 오다 주점 주변에서 대기하던 경찰에게 붙잡히는 일이 벌어졌다.
2016년 12월에는 국정농단 사태 처리가 지지부진한 데 불만을 품은 한 70대가 셀프주유소에서 구입한 휘발유를 이용해 국회에 불을 지르려 했다.
주유소 업계는 고객이 요구하면 유류를 판매하지 않을 방법이 없고, 적법한 방식으로 판매하는 만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 주유소 관계자는 "악용한 사람이 잘못이지, 적법한 전용 용기에 담아 판매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누군가가 술을 마시고 음주운전하다 사고를 냈다고 하더라도 술 판매를 문제 삼을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유소에서 취급하는 유류 자체가 위험한 인화물질이고, 이번 사건처럼 술에 취한 고객이 찾아와 판매를 요구하는 등 위험 발생이 우려되는 경우 판매자가 최소한 의심은 해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판매행위 자체에 관여하는 법 규정을 두는 등 방식은 영업활동에 대한 지나친 규제일 수 있지만, 이런 범죄가 빈발하는 만큼 관계 당국이 업계를 상대로 행정지도나 계도활동은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의심스러울 때 최소한 경찰에 제보라도 했다면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안전에 대한 시민의식이 필요하고, 당국도 업계를 상대로 한 홍보나 행정지도로 경각심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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