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쿠르드 정부 독립 좌절…터키, 시리아 쿠르드군 공격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2014년 6월 테러조직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가 국가를 참칭하고 이라크와 시리아를 휩쓸었던 시절 두 나라의 정규군은 속수무책이었다.
이라크군은 부패하고 허약했으며, 시리아 정부군은 2011년 시작된 내전에 서방이 지원하는 반군과 대치하기에도 힘이 부쳤다.
이라크 제2도시 모술에서 국가 수립을 선언한 IS는 이라크 수니파 지역인 중서부와 북서부를 점령하더니 유전지대 키르쿠크에 밀고 들어왔다.
이라크가 자칫 테러조직의 손에 넘어가려던 위기에서 정부군 대신 키르쿠크를 지켜낸 이들은 쿠르드자치정부의 군조직 페슈메르가였다.
'죽음에 맞선 자'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페슈메르가는 키르쿠크와 이라크 북부를 사수했다. IS의 만행에 피신한 북서부 야지디족의 안식처가 된 곳도 쿠르드자치정부였고, 지난해 말 IS를 쫓아내고 이들의 고향 신자르를 되찾은 주력군 역시 페슈메르가였다.
비슷한 시기 시리아 동부를 중심으로 진군한 IS는 북부 요충지 코바니에 다다라 터키와 국경을 목전에 뒀다.
그러나 이들을 막아선 건 시리아 쿠르드족 정치세력 민주동맹당(PYD) 산하 민병대 인민수비대(YPG)와 여성수비대(YPJ) 였다. 이들 역시 미군의 지원을 받았다.
2014년 9월 한때 IS는 코바니 대부분을 장악했으나 이듬해 1월 사실상 패퇴했다.
코바니 전투는 IS 사태 국면에서 가장 치열했던 교전으로 꼽힌다.
서방으로부터 IS 격퇴전의 선봉부대라는 칭송을 들었던 이들 쿠르드 세력은 3년여가 지난 지금은 하소연할 길 없는 처지가 됐다.
IS 격퇴의 1등 공신으로 꼽히면서도 이들이 사라지자 주변 강국의 외면 속에 오히려 최우선 표적이 됐다.
자신의 선조들이 겪었듯 이번에도 '배신의 역사'가 다시 재현되는 듯하다.
IS 격퇴전에서 흘린 피로 민족의 숙원인 주권국가를 수립하려 했던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는 실제 지난해 9월 분리·독립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그러나 IS 격퇴전에서 지원했던 미국, 유럽연합(EU) 등 서방이 이라크의 안정을 이유로 모두 이를 반대했고 인접한 강국 이란과 터키 역시 자국내 쿠르드족의 동요를 우려해 강하게 압박했다.
이라크 정부는 이런 국제적 분위기에 힘입어 지난해 10월17일 페슈메르가가 사수한 키르쿠크에 군을 보내 무력으로 관할권을 되찾았다.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쿠르드자치정부 수반 마수드 바르자니는 주권국가 수립이 사실상 좌절되자 사퇴를 선언하면서 "쿠르드족이 의존할 수 있는 친구는 산밖에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전세계에 알려졌다"며 분루를 삼켰다.
시리아 쿠르드족 역시 IS 격퇴전에서 부각한 존재감과 시리아 내전의 틈을 타 독립국가 수립을 추진했지만 터키에 무력진압될 위기에 처했다.
터키는 자국내 정치세력인 쿠르드노동자당(PKK)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해 가혹하게 탄압하고 있다.
터키는 시리아 북부의 대(對)IS 선봉대 YPG도 PKK의 일파로 본다.
IS 격퇴전 중에는 YPG가 서방의 지원을 받는 데다 IS를 소탕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으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지만 IS가 소멸국면에 접어들자 20일 본색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터키군은 이날 오후 YPG와 IS를 겨냥한 '올리브가지 작전'을 개시한다고 선언했다.
시리아에서도 IS가 유야무야해지는 터라 이 군사작전은 쿠르드족 YPG를 겨냥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터키군이 공습한 곳은 시리아 쿠르드 지역인 알레프주 아프린과 만비즈다.
터키의 군사행동에 대해 "IS에 대적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전력"이라고 호평하면서 YPG를 지원한 미국도, 우호적이었던 러시아도 이들 쿠르드족에 손을 내밀지 않았다.
이라크 페슈메르가와 시리아 YPG 모두 이라크와 시리아의 쿠르드족 모두 전투 중에 아랍계를 학대했다거나, 민간인을 보복 살해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전경험에 기반을 둔 강한 전투력으로 서방을 대신해 IS 격퇴전장을 누비던 이들에게 독립국가와 자치권이라는 과실 대신 주변 열강의 역공이라는 냉엄한 현실만이 돌아오게 됐다.
hska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