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술에 취한 50대 남성이 서울 종로의 한 여관에 불을 질러 투숙객 5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방화범은 중식당 배달원 유 모(53) 씨로, 20일 새벽 여관 주인에게 성매매 여성을 불러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구매해 범행을 저질렀다. 사망자 중에는 방학을 맞아 지방에서 서울로 여행을 온 30대 엄마와 10대 두 딸이 포함돼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불이 난 여관은 종로5가 뒷골목의 숙박업소 밀집지역에 있는 낡은 시설이었다. 하루 1만5천 원 수준의 월 숙박료를 선불로 내고 저소득층 장기투숙자가 많이 이용하는 곳이라고 한다. 실제로 이날 화재 피해자 10명 중 3명이 장기투숙자였다. 경찰은 21일 유 씨를 현존건조물 방화치사 혐의로 구속했다.
이번 화재는 투숙객들이 깊이 잠든 새벽 시간에 발생했다. 인화성이 강한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데다 건물이 낡아 피해가 컸다고 한다. 그러나 불이 났을 때 경보가 울리지 않았고, 건물 옥상에는 창고 용도의 가건물이 있어 투숙객들이 대피할 수 없는 구조였다. 숙박업소인데도 화재에 대비하는 기본적 설비조차 갖추지 못했고, 다른 소방법 규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던 것 같다. 휘발유 전용 용기를 갖고 가면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살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술에 취한 유 씨가 새벽 시간대에 범행에 쓸 휘발유를 쉽게 산 것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안전 문제에 둔감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이 다시 한 번 드러난 셈이다.
유 씨가 분노 상태에서 여러 명의 투숙객이 잠자는 여관에 불을 지른 것도 충격적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충동적으로 표출되는 일종의 분노범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홧김에 불을 지르는 우발적 방화 범죄는 실제로 증가세에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작년 1~8월 전국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629건 발생했는데 절반 정도가 '단순 우발적' 또는 '가정불화'로 인한 것이었다. 갈수록 늘어나는 분노범죄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범죄 유형별로 체계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 같다. 방화 범죄자는 폭력적 행위 등 사전징후가 나타나는 만큼 상담이나 치료 프로그램을 늘리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이번처럼 화재에 취약한 숙박업소가 소방 관리와 규제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는 것도 문제다. 유사 숙박시설로 이용되는 고시원이나 독서실은 더 심각하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고시원을 숙박시설로 개조해 불법 영업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업소는 대부분 숙박업소가 갖춰야 할 기본적 소방안전시설조차 돼 있지 않아 화재 시에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소방당국의 철저한 점검과 관리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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