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성 개선 효과…"지역 의료기반 약화 악순환" 우려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 대전에 사는 김모(34·여)씨는 경북 문경의 친정아버지 폐암 수술을 위해 인근 대학병원을 알아보다가 결국 서울의 대형병원을 선택했다.
대전·대구 등 지방의 대형병원이 영 미덥지 않았던 김씨는 '마침 수서고속철도(SRT)가 개통됐으니 서울 강남지역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대전에 있는 우리 집에서 머물다가 기차를 타고 병원에 치료하러 다니면 된다'고 아버지를 설득했다고 한다.
경남에 거주하는 A씨는 지역 대학병원에서 '중병 말기' 진단을 받고 주변을 모두 정리한 뒤 치료를 위해 서울지역 병원에 갔다가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알고 보니 약만 먹으면 낫는 단순 전염성 질환이었다. A씨는 서울서 진료를 마치고 나서 말기 진단을 내렸던 병원을 찾아가 거세게 항의했다.
SRT가 개통된 이후 지방 환자나 건강검진 수검자들 사이에서 서울 강남지역 대형병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서울의 대형병원이 의사 실력이나 시설 등 모든 면에서 지역보다 낫다는 인식이 폭넓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의료인들 사이에서도 이와 같은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영남지역의 한 대형병원 의사 B씨는 부모님이 편찮으시면 가급적 시설이 좋은 서울지역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게 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수서역은 삼성서울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내로라하는 대형병원에서 치료받기를 원하는 지방 환자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대전은 물론 부산·전남 목포 등에서도 당일치기로 서울서 건강검진이나 진료를 받고 귀가할 수 있다.
삼성서울병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은 SRT 개통 이후 기존 셔틀버스 노선을 수서역까지 연장해 매 10∼15분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다.
서울 강남지역 병원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일각에서는 안 그래도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취약한 지역 의료기반에 더 악영향을 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역 병원이 환자를 서울에 빼앗기면서 지역 의료가 발전할 수 있는 여지도 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25일 "서울 의사가 지역 의사에 견줘 수술량 등 경험이 더 많을 수는 있지만 실력 격차가 크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며 "시설이나 장비 등도 차이가 없거나 차이가 있더라도 큰 의미가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충청권에 거주하는 한 전직 의료인도 "웬만한 치료는 지방 대도시에 있는 병원도 충분한데 사소한 질환으로 서울의 병원까지 찾는 것은 불필요하다"며 지역 의료기관을 신뢰한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지역의 한 병원 관계자는 "SRT 개통과 셔틀버스 운행이 지역 환자를 서울로 몰리게 한다고는 보지 않는다"며 "환자들이 의사의 전문성과 시설·서비스 등을 알아보고 자율적으로 병원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강남지역 병원 관계자는 "강남 대형병원은 기존에도 늘 예약이 꽉 차 있었던 만큼 SRT 이후 환자가 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SRT 개통으로 지역 환자들의 교통 편의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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