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사찰 의혹, 조사통해 밝혀야"…"의혹 확대 자제하고 사법개혁에 집중"
'조사 미흡했다' vs '별건조사 왜 했나' 논란…삭제파일 '증거인멸'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한 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64일 만에 조사결과를 내놓았지만, 이를 둘러싼 법원 구성원 사이의 갈등은 오히려 골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22일 법원과 법조계에 따르면 '판사 동향을 파악한 문건은 다수 발견됐다'는 취지의 추가조사위의 조사결과를 두고 법원에서 다양한 해석과 반응이 나오고 있다.
판사들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즉 법원행정처가 특정 성향의 판사 명단을 만들어 인사상의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 자체는 근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며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자칫 형사 문제는 물론 헌법위반 문제로까지 비화할 수 있었던 논란인 만큼 핵심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지 않은 점은 다행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실체 없는 의혹을 제기해 무리하게 추가조사까지 벌이도록 한 측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법원 구성원 간 반목을 야기하고, 사법부 신뢰를 하락시킨 데 대해 추가조사를 요구한 전국법관대표회의 측과 이 요구를 수용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행정처가 부당한 정보수집 활동으로 판사들에 대한 광범위한 동향파악에 나선 점이 조사결과 드러난 것을 두고 또다시 갈등이 재현될 조짐이다.
특히 법관 인사나 감사 업무와 상관없는 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을 이른바 '거점법관'으로 삼아 법원 내 정보수집에 나선 것을 두고 행정처가 본연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처는 대법원장의 사법행정 보좌와 일선 재판업무 지원이 주된 업무다.
법원행정처가 이런 업무와 별개로 판사 모임과 판사들에 대한 광범위한 동향파악에 나섰다는 점에서 낡은 관행을 전면 개선해야 한다는 비판에 힘이 실린다. 법원의 자정 시스템이 한계에 달했으므로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법관의 동향파악 문건을 별도로 조사할 기구를 설치하거나 법원이 자체조사를 통해 문건작성의 경위와 목적, 보고체계 등을 규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법원에서 제기된다.
일부 판사들은 신속한 조사와 엄중한 문책을 통해 더는 의혹이 확대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소모적인 의혹에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국민이 원하는 사법제도 개혁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과 맥락을 같이 한다.
추가조사위의 조사과정을 둘러싼 논란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우선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며 조사활동을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물적 조사 대상인 법원행정처 컴퓨터 4대 중 임종헌 전 차장이 사용했던 컴퓨터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암호가 설정된 760여개의 파일을 끝내 열어보지 못한 것도 한계라는 시각도 있다.
임 전 차장의 컴퓨터와 암호화된 파일에 대한 조사가 실시될 경우 추가 동향파악 문건은 물론 문제의 블랙리스트 문건이 실제 발견될 수 있다는 추측을 일각에서는 내놓는다.
반면 추가조사위가 본래의 취지와 목적을 벗어난 '별건 조사'를 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항소심 판결과 관련해 청와대와 법원행정처가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이 담긴 문건과 관련돼 있다.
이 문건은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이 없는데, 당초 사생활 침해 논란을 피하기 위해 검색어를 제한하고 문건을 추려낸 조사위가 굳이 이 문건을 조사한 이유와 경위를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별건 조사 논란을 별론으로 하더라도 원 전 원장의 재판 관련 문건을 두고 법원 내부에서는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많다. 형사재판과 관련해 법원행정처와 청와대가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점은 문제가 있다는 반응이다.
서울동부지법의 문유석 부장판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원 전 원장 재판 관련 문건을 놓고 "참담하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조사대상 컴퓨터 속 파일이 일부 삭제된 정황을 두고서는 증거인멸 여부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추가조사위는 300여개의 파일이 삭제됐다가 복구됐지만, 암호가 걸려있어 열어보지 못했고 파일 형태로 존재한 것으로 확인된 '박모 판사 동향 파악' 문건은 삭제 상태에서 복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이 파일들이 블랙리스트 의혹이 제기된 후 삭제된 것이라면 해당 컴퓨터 사용자를 증거인멸 혐의로 처벌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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